관세 전격 유예 거듭…협상 유리 고지 노리면서도 자국 타격 감안 분석
멕시코·캐나다, 불이익 최소화 도모하면서도 "美요구 불명확" 고충 토로
철강·알루미늄·상호관세 등 앞두고 한국 면밀 대응 필요 지적
동맹을 불문하고 관세전쟁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와 멕시코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했다가 유예하고 부과를 강행했다가 바로 유예하는 등 오락가락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불확실성을 키워 유리한 협상 고지를 점하는 트럼프식 전략이면서 동시에 관세전쟁에 따른 미국 산업계와 소비자들의 타격 심화를 감안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관세전쟁 최전선에 선 미국의 이웃 캐나다와 멕시코는 상황을 주시하며 불이익 최소화를 도모하고 있으나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황에 대한 좌절감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멕시코와 캐나다 수입품 중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이 적용되는 품목을 대상으로 내달 2일까지 '25% 관세'를 면제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4일 0시를 기해 관세가 발효된 지 불과 이틀만이다. 멕시코산 수입품 절반 정도와 캐나다산 수입품 38%가 이번 면제 대상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발효 하루 만인 전날에는 멕시코, 캐나다산 자동차에 대해 1개월 관세 면제를 결정했는데 다음날 재차 면제 범위를 대폭 늘린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를 놓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인 것은 처음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20일 취임한 직후 2월 4일부터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중국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다 발효 하루 전인 2월 3일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25% 관세를 한달간 전격 유예했다. 중국에 대해서만 예정대로 10% 추가 관세를 부과했고 지난 4일 10%를 더 얹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 부과 근거로 불법 이민자와 펜타닐 등 마약 유입을 내세우고 있다. 이어 무역 적자와 자동차 같은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4월 2일 상호관세 부과를 예고한 상태이며 이달 12일부터는 모든 국가의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정책에 있어 전격적인 유예 카드를 동원하는 것을 두고서는 각국과의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라는 해석과 함께 관세 전쟁이 미국 경제에 몰고 오는 역효과를 감안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GM, 스텔란티스, 포드 등 미국 내 주요 자동차기업들은 관세가 미국 내 자동차 소비자 가격의 급등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우려하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 재고를 요청, 1개월 유예 조치를 이끌어냈다.
자동차 업계 말고도 농업 분야를 비롯한 여러 업계가 관세전쟁으로 인한 타격을 피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유사한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JD 밴스 부통령은 전날 "여러 분야 업계들이 관세 부과 면제 대상에 포함해 달라고 우리에게 요청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관세전쟁에 따른 자국 내 피해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그는 4일 상하원 의회 연설에서 "관세는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약간 차질이 있겠지만 괜찮다.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종잡을 수 없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행보에 캐나다와 멕시코는 상황 변화를 주시하며 불이익 최소화를 도모하는 한편 깊어지는 불확실성에 대한 좌절감도 토로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멕시코와 캐나다의 관세 협상팀은 트럼프 행정부의 이 같은 행보에 분통을 터뜨렸다. 미국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아 문제 해결이 불가능해 보인다는 불만을 표했다는 것이다.
캐나다와 멕시코 당국자들은 협상의 범위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때로는 펜타닐에 초점을 맞췄다가 또 다른 때는 이민 또는 무역 적자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토로했다.
한 멕시코 당국자는 "화난 파트너를 상대하고 있는데 상대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를 모르는 것과 같다"라며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라고 했다.
캐나다 외무부 장관은 '사이코드라마'라는 표현까지 썼다.
멜라니 졸리 캐나다 외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에 대해 "이런 사이코드라마를 30일마다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면서 "문제는 미국 대통령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워싱턴에 있는 당국자들에게 결국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물었지만 '곧 알게 될 것'이라는 답을 들었다. 단 한명의 의사결정자만이 답을 알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갈피를 잡기 어려운 관세 행보는 가뜩이나 탄핵정국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한국의 대응에도 더욱 면밀함을 요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한국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철강·알루미늄 제품 관세가 12일 예정돼 있고 내달 2일부터는 상호관세도 시작되는 가운데 전격 유예를 비롯한 각종 카드가 미국 내 상황과 맞물려 동원될 가능성까지 감안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4일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냉혹한 국제 질서를 절감하는 요즘"이라면서 "무엇보다 정부와 국회, 민간이 힘을 합쳐 당면한 미국발 통상 전쟁에 총력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dy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