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례 없고 독립기관 수장 해임 엄격히 판단하는 90년전 판례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준금리 인하 요구에 응하지 않는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강도 높게 압박하면서 대통령에게 연준 의장 해임 권한이 있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몇개월간 파월 의장을 해임하는 방안을 은밀히 논의해왔다는 미 월스트리트저널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독립기관이자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 수장을 마음대로 해임할 권한은 없다는 게 일단은 대체적 시각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18일(현지시간) 트럼프에게 파월 의장을 해임할 권한이 있는지에 대해 "법적으로 이에 대한 답은 복잡하고 검증된 바가 없다. 지금껏 어떤 연준 의장도 대통령에 의해 쫓겨난 적이 없다"고 짚었다.

연방준비법상 의장과 이사들은 부정행위 등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는 해임될 수 있다.

그러나 정책 관련 의견불일치는 이러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통설이다.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의 연준 전문가 세라 바인더는 "(해임을 둘러싼 법적 분쟁시) 법원은 일반적으로 금리 설정과 관련한 의견충돌을 정당한 사유로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기존 판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상당히 불리한 편이다.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미 대통령은 뉴딜 정책에 반대하는 윌리엄 험프리 당시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을 해임했으나, 2년 뒤인 1935년 연방대법원은 이러한 조처가 불법적이라고 판결했다.

연방거래위원회법은 부정행위나 직무태만, 무능 등 사유가 아니면 위원장을 해임할 수 없도록 했는데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쫓아낸 건 잘못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 판례는 이후 연준을 비롯한 미국의 모든 독립기관 수장들이 정책 결정과 관련한 정치적 압박에 굴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버팀목 역할을 했다고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소개했다.

변수로는 미 연방대법원이 판례를 뒤집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꼽힌다. 미 연방 대법관 구성은 트럼프 대통령이 1기 집권(2017∼2021년) 당시 임명한 3명을 포함, 현재 6대 3으로 보수가 우위에 있다.

연방대법원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보장 관행을 무시하고 해임한 노동관계위원회(NLRB), 공무원성과체계보호위(MSPB) 등 다른 독립기관의 고위 당국자들과 관련한 사건을 심리 중이기도 하다.

타임은 해당 재판에서 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편을 든다면 파월이 해임될 경우의 법적 분쟁 향방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파월 의장은 2018년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연준 의장에 임명했고,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재신임하면서 2026년 5월로 임기가 연장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나는 그(파월)와 잘 맞지 않는다"며 "내가 그의 사임을 원하면 그는 매우 빨리 물러날 것"이라고 말했고, 이에 앞서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도 "파월의 임기는 빨리 종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파월 의장은 조기퇴진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16일 시카고 이코노믹클럽 연설에서 "우리는 어떠한 정치적 압박에도 영향받지 않을 것"이라면서 연준은 미국인에게 무엇이 최선인지에만 근거해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hwangc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