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웃]
1997년 대선에서 집권 여당인 신한국당은 사실상 처음으로 대통령 후보 경선을 실시했다. 이에 당 내부에서 이른바 9룡이 나왔으나, 당 대표를 맡고 있던 이회창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신한국당 경선에서 탈락한 이인제 후보는 이 후보의 병풍 의혹이 불거지자 국민신당을 창당해 독자 출마했다. 보수의 분열은 대선의 핵심 변수로 작용했다.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자민련과의 'DJP 연합'을 통해 중도 보수층까지 흡수해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2002년 대선에서 보수 진영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대세론'을 등에 업고 유력 주자로 떠올랐다. 사실 당내에서는 거의 대항마가 없을 정도였다. 대선 여론조사에서도 다른 후보들을 압도했다. 하지만 야권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극적인 단일화를 이뤄내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여론조사 방식의 후보 단일화로 노 후보가 선출되고 정 후보가 지지를 선언하는 드라마틱한 전환이 인상적이었다. 선거 전날 정 후보의 단일화 파기 선언이 있었지만, 이미 쏟아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치러지는 올해 6·3 대선도 복합적인 구도를 띠고 있다.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전 대표를 중심으로 일찌감치 전열을 정비한 상황이다. 반면에 국민의힘은 복수의 주자들이 저마다 출사표를 내면서 내홍을 겪고 있다. 윤 전 대통령과 갈등 끝에 탈당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가세했다. 여기에 변수로 떠오르고 있는 인물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다. 국힘 일각에선 한 대행이 출마하면 중도 이미지를 바탕으로 안정감을 원하는 유권자층을 흡수할 수 있다며 '차출론'이 힘을 받고 있다.
현 상황을 보면 이 전 대표는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당내 결속을 이루며 유력 후보로 자리매김한 형국이다. 다만 무당층의 비호감 이미지는 넘어야 할 장벽이다. 국힘은 주자 난립으로 힘이 분산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유승민 전 의원이 각각 대선 불출마와 경선 불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또 이준석 대표가 완주한다면 보수표는 분산된다. 한 권한대행은 후보 단일화의 대상으로 부상 중이지만, 국힘 주자들과 조율이 안 되면 분열만 심화시킬 수 있다.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 정당성 여부도 걸림돌이다.
대선의 성패는 누가 정책과 정체성, 리더십을 명확히 제시해 시대정신을 선점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단순한 정치공학적 접근을 넘어 국가 비전과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는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 위기와 사회 양극화, 국제 관계의 불예측성이 더해진 현 시점에서 유권자들은 냉정한 판단을 내릴 것이다.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분수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