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주식 시장 '출렁'에 정책 '유턴'
"진열대 텅 빌 것" 소매업계 경고도 영향 미친 듯
"트럼프가 적수(match)를 만났다"
전 세계를 상대로 거침없는 관세 드라이브를 걸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연이어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인 데에는 미국 국채·주식 시장의 혼란이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적수를 만났다"면서 시장이 바로 그 적수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재입성 후 90여일간 연방정부 구조조정, 동맹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관세 정책 등을 밀어붙이며 세계를 뒤흔들었다.
미국에서 반(反)트럼프 시위가 확산하는 등 국내외 반발이 잇따랐지만 꿈쩍하지 않던 트럼프 대통령을 멈춰 서게 한 건 바로 월스트리트였다는 게 WSJ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은 이달 2일 전 세계 교역국을 상대로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했을 때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미국 국채·주식 시장이 요동치자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지난 9일 중국을 제외하고 나머지 국가에 대한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주가지수는 지난 3∼8일 12% 넘게 떨어졌고, 특히 시장금리의 벤치마크인 10년물 미국 국채 금리는 3일 3.85%를 찍은 뒤 8일께 4.51%까지 치솟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국채 시장의 반응 때문에 상호관세를 유예했냐는 질문에 "난 국채 시장을 보고 있었다. 국채 시장은 매우 까다롭다"면서 "내가 어젯밤에 보니까 사람들이 좀 불안해하더라"라고 말했다. 시장 영향을 일부 인정했다는 게 WSJ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또 지난 22일 대중국 관세에 대해 "매우 높다"면서 "상당히 내려갈 것"이라고 말하며 한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도 시장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 CNN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 21일 월마트, 타깃 등 미국 대형 소매업체 대표들을 만나 '관세로 매장이 텅텅 빌 것'이라는 경고를 들은 것과 시장 변동성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을 향해 연일 사퇴 압박성 발언을 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해고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태도를 바꾼 것 역시 시장 혼란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은 파월 의장을 해임할 경우 금융시장이 큰 혼란에 빠질 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금리 인하'도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우존스 마켓데이터에 따르면 S&P 500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이날까지 10.3% 하락해 1928년 이후 대통령 집권 첫 94일 기준 가장 부진한 모습이다.
S&P500은 최근 10거래일 가운데 7거래일에 1% 넘는 등락률을 기록했다. 이번 달 S&P500 변동성이 코로나19 확산 초반이던 2020년 이후 최대 수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WSJ은 큰 증시 변동성이 '뉴노멀'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서울=연합뉴스) 차병섭 기자 bsch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