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조지아주 구금시설서 석방, 고단하지만 밝은 표정으로 버스 탑승
수갑 차지 않고 평상복…약 5시간 이동에 버스 안에는 간식·음료
탑승후엔 고단한 듯 눈붙여…"낙담했던 직원 통화 목소리 밝아져"
11일(이하 현지시간) 새벽 미국 조지아주 남부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 철문을 나서는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합작공장 건설 현장 근로자들의 표정은 고단해 보이면서도 밝았다.
약 일주일간의 구금에서 벗어난 이들은 체포 당시와는 달리 수갑을 차지 않은 채 가벼운 평상복 차림이었다.
어떤 이들은 환하게 웃으면서 먼발치에 자리 잡은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고, 현장대책반장으로 마중나온 조기중 워싱턴 총영사의 손을 부여잡고 감사를 표하는 사람도 있었다.
직원들이 석방되는 모습을 지켜보러 왔다는 한 협력업체 임원은 "구금 중인 직원과 (전날) 오후 3시 통화 했을 때만 해도 낙담한 목소리가 너무 힘들어 보였는데, 오후 7시 다시 전화가 왔을 때는 석방 일정이 잡혔다며 들뜬 목소리였다"라고 전했다.
10일 오후 10시 무렵 도착한 포크스턴 구금시설은 한국인 300여명의 귀국을 앞두고 준비 작업을 하며 분주해진 분위기였다.
전날 출국 12시간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석방 연기' 결정이 내려지면서 적막한 모습을 보였던 것과는 상반됐다. 좋은 징후였다.
주차장엔 대형 버스들이 시동을 걸어둔 채 비상등 깜빡이를 켜고 대기 중이었다. 오후 10시 20분께 8번 번호판을 붙인 버스가 도착했고, 추가로 버스는 오지 않았다.
미 연방정부 표시가 붙은 당국 호송버스가 아닌 일반적인 민간 버스들이었다.
현장에 취재진 20여명이 있었고, NBC, CBS 등 미 주요 방송 매체들도 한국인 구금 사태에 큰 관심을 보이며 현장에 카메라를 대기시켰다.
첫 번째 버스는 구금시설 철문 앞에 대기한 채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구금자들이 시설 내부에서 버스에 탑승한 채로 나올지, 시설 바깥으로 나온 뒤 버스에 탑승할지 알지 못해 취재진 사이에 추측만 무성했다.
그러던 중 11일 새벽 1시 20분께 망원 렌즈로 버스를 지켜보던 카메라 취재진이 갑자기 "지금 타고 있다"라고 외쳤다.
확대된 카메라 스크린 속엔 줄을 서며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선명했다.
지난 4일 미 이민당국의 대대적인 기습 단속으로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합작공장 건설 현장에서 체포·구금된 LG엔솔과 협력사 직원들이었다. 구금된 지 약 일주일만의 시설 바깥 공기였다.
일부 취재진은 반가운 마음에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 차량 안을 향해 두 팔을 번쩍 들고 손을 흔들었다.
"왜 손을 흔드냐"라고 궁금해하는 외신 기자 질문에 "버스 안 사람들을 향해 흔드는 것"이라고 귀띔해줬다.
첫 차량 탑승이 끝나자 승차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마스크를 쓴 채 담담한 표정으로 탑승하는 이도 있었고, 누군가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이도 있었다. 대부분 밝은 표정이었다. 탑승하면서 취재진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도 보였다.
맨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망원렌즈로 촬영된 버스 안 사진 속엔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는 듯 곧바로 눈을 붙이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차량 안에는 긴 차량 이동 기간 먹을 간식과 음료가 미리 준비돼 있었다고 LG엔솔 관계자는 전했다.
오전 2시 10분께 마지막 8호차 탑승이 완료됐고, 6분 뒤 1호차를 시작으로 총 8대의 버스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오전 2시 18분 8호차가 떠나자 현장에 나와 있던 취재진과 업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환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포크스턴 시설에 구금됐던 이들은 약 5시간 동안 이동해 대한항공 전세기가 대기하고 있는 하츠필드-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으로 이동한 뒤 11일 정오(한국시간 12일 오전 1시)께 애틀랜타 국제공항을 출발해 한국시간 12일 오후 4시경 인천공항에 도착할 전망이다.
탑승이 끝나갈 무렵 기자는 고성능 카메라로 탑승 장면을 찍고 있던 외신 카메라 기자에게 이번 구금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자신이 뉴욕 출신이라고만 밝힌 그는 방송 카메라에 자신의 목소리가 녹음되면 안 된다는 듯 기자에게 귓속말로 "끔찍하다(It's awful). 솔직히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포크스턴[미조지아주]=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 p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