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韓뿐 아니라 美서도 분노·우려…국민 감정 악화 해소해야
트럼프가 의지 보인 '전문인력 美비자' 제도화 시급 과제
미국 이민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노동자들이 일정이 하루 정도 지연되는 우여곡절 끝에 11일(현지시간) 풀려나 전세기 편으로 귀국하게 된 가운데 한미 양국은 이번 일을 통해 불거진 문제점을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지난 4일 미 조지아주(州)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300명에 달하는 한국인이 미국의 법 집행 당국에 체포, 구금된 것은 '군사동맹'(상호방위조약)에서 '경제동맹'(자유무역협정)에까지 영역을 확장해온 양국관계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어서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대대적 불법 이민자 색출·추방 작전이 일상화됐다 하더라도 단속 현장이 대미(對美) 투자의 상징이라 여겨지는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캠퍼스 내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했다.
중무장한 요원들이 강압적 분위기 속에서 현장 노동자들을 중범죄자 취급하며 수갑과 족쇄로 묶는 단속 영상을 미 당국이 자랑하듯 공개하면서 한국뿐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분노와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특히 이번 단속은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첫 대좌였음에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한미 정상회담을 한 지 열흘 만에 이뤄진 것이었다.
따라서 우선 이번 사태로 불거진 미국에 대한 한국민의 배신감과 모욕감을 해소하는 일은 한미 양국이 함께 노력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노동자들의 귀국 호송 과정에서 수갑 등 신체 구속을 하지 말라고 미 당국에 지시, 한국의 강력한 요청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 파장이 한미 관계와, 미국의 외자유치 구상에 미칠 악영향을 미측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추정에 힘을 싣는 대목이었다.
이와 함께 현실적 과제로는 대미 투자 기업들이 미국에 파견하는 노동자들의 비자 문제가 가장 시급히 해소해야 할 지점이다.
이번 단속에서 붙잡힌 한국인 노동자들은 단기 상용 비자인 B1, 단기 관광 비자인 B2 비자를 갖고 있거나, 비자면제 프로그램의 일종인 ESTA(전자여행허가제)를 통해 미국에 입국한 경우가 대다수였고, 이것이 '이민법 위반'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나라 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이뤄질 때는 양국 정상까지 나서서 떠들썩하게 발표하며 양국 동맹 발전과 협력 강화를 강조해왔지만, 그 이면에서 기업들이 지닌 대미 파견 직원 비자 문제는 고질적으로 풀리지 않는 민원이었다.
조지아주뿐 아니라 미국 곳곳에 이미 건설했거나 현재 짓고 있는 공장이 반도체나 배터리 등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제품을 생산하는 시설이어서 공장 건설 단계부터 이후 운영까지 고도로 숙련된 노동자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에는 그런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데다 한국 숙련 노동자에 대한 합법적 취업 비자를 취득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기업들은 ESTA나 B1·B2 비자를 받은 직원들을 미국에 '편법 출장'을 보내 현지 인력으로 활용해왔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트럼프 정부는 이러한 우회로를 그냥 봐주고 넘어가지 않겠다는 점이 명확해진 만큼 '익숙한' 관행을 이제는 접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사태로 구금된 한국인들이 자진 출국하는 대신 그대로 미국에 남아 업무를 계속할 수 있게 하겠다는 뜻을 한국 측에 전달하기는 했지만, 정작 불법 이민자 단속 실적을 계속 압박받는 미 이민 당국이 언제 다시 한국의 대미 투자기업을 급습할지 모르는 일이어서다.
정부 역시 기업들이 미국 내 전문 인력 부족 문제 해결을 호소하고 있는 만큼 전문 인력 취업비자인 E-4 신설 또는 전문 직종 외국인을 위한 H-1b 비자의 한국인 쿼터(할당량) 확보 등을 위해 미국 측의 제도화를 끌어내야 한다.
최근 한미 양국이 합의한 관세·통상협상 결과 한국이 앞으로 3천500억 달러(약 486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한국 기업 전문 인력의 비자 문제 해결은 더욱 시급한 상황이 됐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한 방미 과정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 한국인 전문 인력을 위한 새로운 미국 입국 및 취업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양국 외교당국 간 워킹그룹 신설을 제안했고, 루비오 장관은 이를 적극 검토하겠다며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서 외국 대미 투자 기업의 전문 인력에 대한 비자 문제 해결 의지를 보였다는 점도 조 장관의 제안이 현실화할 가능성을 키우는 대목이다.
그는 7일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우리는 당신들이 훌륭한 기술적 재능을 지닌 매우 똑똑한 인재를 합법적으로 데려와 세계적 수준의 제품을 생산하길 권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인재 데려오는 일)을 신속하고, 합법적으로 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외국의 대미 투자 기업에 소속된 최첨단 기술 분야의 전문 인력에 부여하는 비자를 더 확대할 수 있고, 미 연방 의회에 계류 중인 '한국과 파트너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커질 전망이다.
전문 교육과 기술을 보유한 한국인에게 연간 최대 1만5천개의 E-4 비자를 발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 해당 법안은 한국계인 영 김 하원의원(공화·캘리포니아)의 주도로 2013년부터 미국 의회 회기 때마다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고, 지난 7월 119대 의회에서도 김 의원이 다시 발의했다.
다만, 이처럼 한국인 전문 인력 비자 관련 제도화나 법제화가 이뤄지더라도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 합법적으로 파견된 한국의 전문 인력이 기술 및 지식을 미국 노동자에게 전수하고 교육함으로써 미국 내 고급 일자리를 확대한다는 것을 기본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은 더욱 명확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문가를 불러들여 우리 국민을 훈련시켜서 그들(미국인)이 직접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는 우리의 독자적 노하우를 아무 대가 없이 건네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한국 기업이나 정부의 현명한 대처를 요하는 대목이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성민 특파원 min22@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