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어머니'대신 '부모 1/부모 2'로 표기"

[이탈리아]

미성년자 전자신분증 기재
동성 커플 위헌 항소 소송  

이탈리아에서 미성년자 전자 신분증에 '아버지/어머니' 대신 '부모 1/부모 2'라는 성중립적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9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대법원은 이날 내무부가 제기한 상고를 기각하며 "'아버지/어머니'라는 표현은 동성 커플 가족을 배제하는 차별적 조치"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아이의 신분증은 해외여행 등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되는 공식 문서이므로 실제 가족 관계를 정확히 반영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내무부 규정은 다양한 가족 관계를 포용하지 못해 아이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덧붙였다.
이 판결에 따라 내무부는 미성년자 전자 신분증 보호자 표기를 '아버지/어머니'에서 '부모 1/부모 2'로 되돌려야 하는 법적 의무를 지게 됐다고 안사(ANSA) 통신은 전했다.
2015년 이탈리아 내무부는 전자 신분증의 새로운 모델을 도입하며 보호자 정보를 '부모 1/부모 2' 형식으로 기재하도록 했다. 이는 동성 커플과 입양 가족의 법적 현실을 반영한 조치였다.
하지만 2019년 주세페 콘테 내각의 내무부 장관이었던 마테오 살비니 현 부총리 겸 인프라교통부 장관은 내무부령을 통해 보호자 표기를 '아버지/어머니'로 변경했다.
극우 정당 동맹(Lega)의 수장으로 동성혼에 반대 입장을 취해온 그는 "모든 아이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조치로 동성 부부의 입양 자녀가 부모 양측을 전자 신분증에 기재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고 결국 법적 소송으로 이어졌다.
로마 지방법원은 1심에서 이 내무부령이 동성 부모의 자녀에게 차별적이라며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내무부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인 로마 항소법원도 같은 이유로 내무부 항소를 기각했다.
내무부는 최종적으로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대법원 역시 하급심의 판단을 그대로 인용하며 내무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진보 성향 정당들은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제1야당인 민주당(PD) 소속 라우라 볼드리니 하원의원은 "대법원이 마침내 살비니와 멜로니가 수년간 이어온 국가 차원의 괴롭힘을 끝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