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명·재산 피해 잇따라…노후 하수관·지하 공사 영향 커
지자체 GPR 탐사·AI 도입 등 대응책에도 시민 불안 여전
최근 전국 각지에서 연이어 발생한 지반침하(싱크홀) 사고로 인명과 재산 피해가 잇따르자 시민 불안도 커지고 있다.
지반을 약하게 만드는 노후 하수관로와 늘어나는 지하 공간 공사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지자체들은 인공지능(AI) 장비 도입이나 지반탐사 확대 등으로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사고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서울 강동구에서는 지난달 24일 직경 20m·깊이 20m 규모의 싱크홀이 도심 사거리 한복판에서 발생해 지나가던 오토바이 운전자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 8월에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가로 6m·세로 4m·깊이 2.5m의 싱크홀에 승용차가 통째로 빠져 운전자와 동승자 2명이 중상을 입었다.
부산에서는 지난해 9월 사상구 한 도로에서 가로 10m, 세로 5m, 깊이 8m가량의 땅 꺼짐 현상으로 트럭 2대가 빠지기도 했다.
강원도에도 지난 2월 강릉시 주상복합 공사장 인근에서 가로 10m 규모의 지반 침하가 일어났고, 지난 14일 원주시 반곡동에서도 도로 균열이 발생하며 주민들이 불안에 떨기도 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4∼2023년까지 10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싱크홀은 2천85건이다.
광역단체 기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경기 429건이다. 강원 270건, 서울 216건, 광주 182건, 충북 171건, 부산 157건, 대전 130건 등이 뒤를 이었다.
각 지자체와 국토안전관리원 등에 따르면 지반침하 사고는 노후 하수관 손상, 지하수 유출, 시공 불량 등이 주요 원인이다.
강원도의 경우 지반침하 사고의 46%가 하수관 문제로 지목됐고, 인천 송도에서는 상수도관 연결 부위 파열로 인한 토사 유실이, 경기 양주에서는 신도시 조성 당시 우수관 시공 하자로 싱크홀이 발생했다.
경기도가 2018년부터 작년까지 관내에서 발생한 지반침하 사고를 원인별로 분석한 결과 상하수도관 손상에 따른 지반침하가 42.6%로 가장 많았고, 다짐(되메우기) 불량 22.3%, 굴착공사 부실 14.8%, 기타 매설 공사 부실 4.3% 등이 뒤를 이었다.
지하철 공사나 대심도 도로 등 늘어나는 지반 공사도 싱크홀의 한 원인이다.
부산에서는 최근 3년 사이 사상∼하단선 지하철 공사 현장 주변에서만 14건의 싱크홀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이례적인 폭우와 부실한 차수 공법이 겹쳐 싱크홀이 발생했다는 부산시 조사 결과도 있다.
경남에서도 2019년 초고층 건물 공사장에서 지하 굴착작업이 진행되던 중 대규모 침하가 발생했다.
지자체들은 재발 방지대책으로 인공지능(AI) 도입과 지표투과레이더(GPR)를 통한 안전 점검을 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GPR 탐사 확대와 노후 관로 교체를 포함한 '지반침하 예방 종합대책'을 마련했고 '우선 정비구역도'와 '안전 지도'를 제작해 대응에 나섰다.
제주도는 포트홀 중심으로 AI 탐지 장비를 도입해 선제 대응 중이고, 울산은 간선도로를 중심으로 GPR 탐사와 천공 내시경을 통한 정밀 점검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부산시도 GPR 탐사 차량을 확충하고, 지하 굴착 공사 때 자동 계측을 통해 실시간 모니터링을 강화하기로 했다.
부실한 차수 공법이 시행된 사상∼하단선 구간 1천100곳에는 물 침투를 막고 지반을 보강하는 그라우팅 공법을 실시하겠다고 설명했다.
대규모 택지개발, 전철 신설, 기존 철도 지하화 등 지하공간 공사가 집중된 경기도는 이에 따른 대책의 하나로 2020년 '경기지하안전지킴이' 제도를 도입했다.
지하안전지킴이는 토질·지질·구조 등 지하 안전 전문가 40여명으로 구성돼 10m 이상 굴착 공사현장을 대상으로 지하 안전을 평가하고 점검한다.
이들은 지반침하 사고가 주로 우기 때인 6~8월(47.2%) 집중된 것을 고려해 지반 침하 사고 취약 시기인 해빙기(3~4월), 우기(6월), 집중호우기(9월) 등에 연간 3차례 이상 점검하고 시군 담당자를 대상으로 연간 2회 지하 안전에 대해 실무 교육도 맡는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는 GPR 장비가 도입되지 않고, 도입됐더라도 운용할 인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전북도 내 14개 시군에는 GPR 장비가 단 한 대도 없는 실정이다. 충북의 경우 GPR 장비가 있지만 저가형이고 이를 운용할 전문 직원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동아대 이동규 재난관리학과 교수는 "같은 사고가 되풀이되는 것은 더 큰 위험성이 존재한다는 의미"라며 "민관이 머리를 맞대 안전성을 우선 확보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변지철, 장덕종, 김상연, 윤보람, 우영식, 정종호, 천경환, 이재현, 허광무, 임채두, 차근호, 최해민 기자)
(전국종합=연합뉴스) rea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