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평로

제21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꼭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대통령은 나라와 국민을 대표하는 국가원수이자 국군 통수권자이며 행정부 수반인 권력의 중심이다. 지금까지 13명의 대통령이 이 자리를 거쳤다. 왕정에서 민주정으로 사실상 직행한 만큼 국민이 대통령을 왕처럼 인식하던 시대도 있었다. 군 출신들이 장기 집권을 하기도 했고 삼권분립이 공고해지면서 임기를 못 채운 대통령들도 나왔다. 그래도 여전히 대통령 권한은 막강하다.

▶막강한 제왕적 권한

우리 국민은 지금까지 여러 대통령을 뽑아놓고 기대와 실망을 반복해왔다. 이제 세계 10대 경제 대국 안팎을 오가는 국민이라면 왠지 모를 호불호나 감성적 접근 대신 냉철한 판단과 정확한 정책 이해를 바탕으로 선거에 임할 때가 됐다. 제왕적 대통령이란 조어가 남용될 만큼 권한이 큰 건 모두 안다. 다만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뭘 할 수 있는지, 실질적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까지 유권자가 체감하긴 어려웠다.

▶사법부 임명권, 법안 거부권도

대통령 권한은 헌법에서 규정한다. 우선 헌법기관을 구성할 권한을 갖는다. 대법원장과 대법관,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그리고 중앙선거관리위원 일부를 임명할 수 있다. 대부분 국회 동의가 필요하나 사법부에도 임명권을 가진 건 상당한 힘이다. 모든 공무원에 대한 임명·면직권도 보유했다. 국회가 의결한 법률안의 공포권도 있다. 법안을 통과시켜도 거부할 권리를 함께 지녔다는 뜻이다. 법률안 제출권도 사실상 가졌고 법률의 세부적 집행 기준을 정하는 대통령령도 만들 수 있다.

▶대통령 고유의 불소추 특권

국가 안보에 대해선 무한에 가까운 권한과 책임을 지닌다. 군 통수권을 부여해 전쟁과 내란 위기 상황에서 국민 생명을 좌우할 결정을 내리게 했다. 이런 맥락에서 긴급 조치권과 계엄 선포권도 갖는다. 외교상으론 국제사회에서 국가를 대표하고 국가 간 조약 체결과 비준, 외교 사절의 파견과 신임 등 외교 행위를 총괄한다. 국가 체제와 방향을 규정하는 헌법을 바꾸려면 개정안을 내야 하는데, 그 권한은 대통령과 국회에만 있다.

고유의 특권도 있다. 가장 유명한 건 불소추 특권이다. 내란·외환 죄만 빼고 재임 중 형사 소추를 받지 않는다. 범죄자에 대한 감형, 사면, 복권을 결정할 권한도 있다. 퇴임 후와 사후에도 법적 예우를 받는다.

▶‘인사가 만사’ 인사권

이 중 대통령 권력의 실효성을 좌우하는 최대 요소는 인사권이다. 헌법에서 규정한 자리 외에 실제론 수천 개에 달하는 관직을 임명할 수 있고, 공기업 등의 요직에도 인사권이 미친다. 릫인사가 만사릮라는 말처럼 과거 우리 대통령들은 이 인사권 활용의 시기와 폭을 정치적으로 조절하며 정국을 운영했다. 정치적 난국 때마다 개각 카드가 전가의 보도처럼 나왔던 이유다.

▶취임후 개헌은 온데간데

정치권에선 그래서 개헌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대통령의 인사권 독점만이라도 수술하자는 담론이 이어져 왔다. 각 당 후보는 앞다퉈 개헌을 공약했는데, 당연히 핵심은 권력구조다. 주요 후보들은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수정해 1차례에 한해 연임하되, 임기를 4년으로 줄이는 방안을 공통으로 내놨다. 그래야 속칭 제왕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유권자들은 누가 되든 취임 후엔 개헌에 대한 생각도 달라질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인사권 개혁 집중이 순리

대통령 권한의 실질 원천이 인사권이라면 개헌 논의도 임기보다 인사권 개혁에 집중하는 게 순리라는 지적도 있다. 청와대, 정부, 국회 등을 오래 지켜본 경험을 돌아보니 대통령의 힘은 인사권에서 나온다는 논리를 수긍하게 된다. 조각이나 개각 때마다 공무원은 물론 정부 예산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는 기관들조차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는 걸 봤다. 그들의 촉각은 대통령실 내부 기류를 향한다. 이 경우 가장 큰 손해는 국민 유권자가 보게 된다. 모든 후보가 제왕의 폐해를 주장하면서도 대통령실 인사 담당 비서관실의 존폐를 논의하지 않는다면 유권자들로부터 진실성을 의심받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