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유일 혈맹인 미국의 주한 대사 임명이 또 늦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특명전권대사가 없는 대리 체제가 기약 없이 이어지는 중이다. 중국과 일본 주재 대사는 일찌감치 임명돼 동아시아 삼국 중에선 우리만 남았다. 한미 양국 모두 정권 교체가 이뤄진 영향으로 양쪽 모두 대리 체제인 상태이기도 하다.
동아시아 삼국 중 주한 미국대사만 공석으로 남으면서 일각에선 홀대론을 제기하기도 하나 사실 이런 상황이 처음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에도 주한 대사만 1년 반 동안 공석으로 방치한 적 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도 취임 이후 주한 대사만 1년 넘게 지명하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주한 미국대사 자리에 이런 공석 상황이 반복되는 건 한미 동맹의 중요성과 동아시아 정세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이 이재명 대통령의 첫 방미와 한미 정상회담 일정을 조율 중인 상황이란 점을 떠올리면 더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당선인 시절부터 중국과 일본 대사는 미리 낙점해놨지만 유독 한국 대사에 대해선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는 건 심상치 않은 대목일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선 미국 정부가 한국을 동맹이 아닌 관리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다소 과격한 분석을 펼치기도 한다. 미국 조야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시급히 주한 대사를 지명할 것이란 소식이 잘 들리지 않는다. 유력 후보가 누구인지도 윤곽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 상황이다.
최근까지 미국 보수 정치권 안팎에서 주한 대사 하마평에 오른 인사들 가운데 중량급은 앨리슨 후커였다. 1기 트럼프 정부에서 대북 협상 실무를 주도했던 만큼 유력 후보로 떠올랐지만, 최근 국무 차관에 중용되면서 자연스레 후보에서 제외됐다. 이에 따라 공화당 소속으로 연방 하원의원을 두 차례 지낸 미셸 박 스틸이 유력한 후보가 됐다는 말도 있다. 한국계인 그는 지난해 말 선거에서 아시아계가 다수인 민주당 우세 선거구에서 분투했으나 석패했다.
트럼프 정부가 중국과 헤게모니 전쟁을 재개한 만큼 한국의 대사로도 강경 반중 인사가 내정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데이비드 퍼듀 주중 대사와 조지 글래스 주일 대사 모두 반중 정치인이다. 스틸 전 의원도 선거 캠페인 기간 공자학원 퇴출을 외치는 등 강력한 반중 메시지를 냈다. 이런 면에서 반중 인사이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고든 창 변호사의 지명 가능성도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던 도중 객석에 있던 창을 '위대한 고든 창'이라 부르며 일으켜 세운 뒤 자신의 대중국 정책에 관한 평가를 공개적으로 구하기도 했다. 트럼프 1기 때 국무부 국제형사사법대사를 지낸 북한 인권 전문가 모스 탄의 이름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내부에선 1기 정부 때 중용했던 조지프 윤 대사대리가 현재 무리 없이 업무를 수행 중인 만큼 대사로 올리자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lesl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