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천/치과의
정유년이 밝았다. 단기 4350년, 서기 2017년, 십이지의 열 번째 닭의 해다.
닭은 아침을 여는 상서롭고 신통력을 지닌 서조(瑞鳥)로 여겨왔다. 어둠을 가르고 목청 높여 울면서 새벽을 알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닭의 울음소리 계명(鷄鳴)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으로, 더 나아가 한 시대를 여는 개벽으로도 비유되어 왔다.
해서 그랬는지 시인 이육사도 '광야' 란 시에서 '까마득한 날에/하늘이 처음 열리고/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라고 읊으며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리던 그 장엄한 순간에 닭의 울음을 말했다.
이처럼 새벽을 알려주는 닭은 태양의 새이기도 했다. 해서 무속 신화나 건국 신화에서 닭은 울음소리로 나라의 임금이나 왕후의 탄생을 알리는 신비한 영물이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박혁거세와 김알지 신화가 그랬다. 박혁거세의 왕비인 알영 부인은 계룡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났고 금빛 찬란한 황금 궤 안에서 나온 김알지는 하얀 닭이 그의 탄생을 알려줬다. 이 때문에 신라는 처음에 '계림'이라 불렸다.
아울러 닭은 십이지 열두 동물 중 유일한 날짐승으로 그 날개를 펴 망자의 길을 안내하고 귀신도 쫓는다고 한다. 도깨비나 귀신은 빛을 무서워해 밤에만 떠돌아다니는데 닭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일제히 물러간다. 이 때문에 민간에서 닭은 나쁜 정령이나 귀신을 쫓는 상서로운 동물로 생각했던 거다. 해서 정초가 되면 액운을 쫓기 위해 닭 그림을 집 안에 걸어 놓기도 했다.
닭울음이 생명의 시작만 아니라 죽음과 사후세계까지 통하는 영성(靈聲)인 것을 말하는 거다.
'심청전'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닭아, 닭아, 울지 마라/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나 죽기는 섧지 않으나/ 의지 없는 우리 부친/ 어찌 잊고 가잔 말가!'날이 새면 뱃사공에게 팔려서 죽으러 가야 하는 심청의 심정을 읊은 노래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계명인 셈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부귀공명과 입신출세,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데도 사용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사람은 서재에 닭 그림을 걸었다. 닭의 볏이 벼슬을 상징하는 관을 쓴 모양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머리에 있는 볏이 문(文)이라면 날카로운 발톱은 무(武)이고, 싸움 또한 잘하니 용(勇)이 있으며, 먹이를 보면 서로 부르니 이는 즉, 인(仁)을 말함이요 해가 뜨고 지는 것도 알려 주니 그것이 신(信)이라. 그러고 보면 닭은 이 모든 오덕(五德)을 겸비한 새 중의 새다.
이제 '정유년'(丁酉年)을 맞았다. 정유년의 '정'(丁)은 붉은 색을 뜻해 특별한 '붉은 닭'의 해로 본다. 그리고 '붉음'은 바로'밝음'을 의미하니 올해를'밝은 닭의 해'라고도 하는 이유다.
지난 한해 한국은 국정농단이라는 캄캄한 혼돈의 정국이었다. 이러한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헌데 어차피 어둠은 언젠가는 걷히게 돼 있다. 마침 정유년 밝은 닭의 해를 맞이하여 어두운 정국의 모든 난제가 순리대로 풀리고 더욱 밝고 질서 있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되리라 기대되는 바가 매우 크다.
스포츠서울·코리아타운 데일리 애독자 여러분도 정유년을 맞이하여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해 뜻하는바 모두 이루시기를 바란다.
2017-01-03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