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시간 속에서도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장면이 있다. 7월 초 LA 한국문화원에서 상영된 국립무용단의 ‘몽유도원무’는 그날보다 오늘 더 자주 떠오른다. 짧지만 깊은 48분의 시간은 스크린이라는 매개를 넘어 조용한 울림으로 다가왔고, 비록 극장의 생생한 공기를 직접 마시지는 못했지만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감흥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무대는 우리 곁으로 조용히 다가왔고, 몸짓은 말보다 먼저 마음을 건드렸다.
이 작품은 조선 초기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출발한다. 세종의 아들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이상향을 화가는 종이 위에 펼쳐냈고, 국립무용단은 그 풍경을 절제된 춤으로 무대 위에 다시 그려냈다.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고 강물이 잔잔히 흐르는 그 고요한 세계는 움직임을 통해 피어났고, 그 안에는 말없는 철학이 숨 쉬고 있었다. 텅 빈 듯한 무대는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고, 손끝 하나와 시선의 미세한 떨림은 절제된 감정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내면의 풍경을 흔들어 깨웠다.
그러는 동안 문득 떠오른 것은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이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계는 본질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그의 철학처럼, 이 무대의 춤은 실재 너머의 보이지 않는 진실을 향해 조용히 다가가고 있었다. 그 몸짓은 닿을 수 없기에 더 간절했고, 말할 수 없기에 더 진실했으며, 그 진심은 몸의 선율을 따라 묵묵히 전해졌다. 춤은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다가가려는 몸의 사유였고, 이 무대는 그 자체로 본질을 향한 철학적 여정이었다.
음악은 초반에는 몰입을 유도하며 긴장감을 유지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반복되는 리듬은 감정의 환기를 멈추게 하고 한자리에 머문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그 고요함조차 무대의 정서와 흐름 속에서는 하나의 여백이 되어 오히려 관객이 스스로 감정의 결을 따라가게 만들었고, 국립무용단은 춤과 음악, 조명, 미디어아트를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전통과 현대, 유형과 무형이 어우러지는 감각적인 여정을 완성해냈다. 현실의 고단함을 잠시 벗어나 도원이라는 상상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그 시간은 누구에게나 마음속 어딘가에 품고 있는 이상향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켰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무대는 꿈이 아니라 현실과도 닿아 있었다.
LA라는 일상의 도시 한가운데에서 펼쳐진 이 조용한 무대는 예술이 어떻게 시간과 공간을 연결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고, 공연이 끝난 후에도 그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으며, 춤이 남긴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이 스며들어 마음속에 자리를 잡았다. 예술은 그렇게 한순간을 넘어서 존재하게 되며, 그 존재는 삶의 어느 결에선가 다시 말을 건다.
LA 한국문화원의 새로 부임하신 이해돈 원장님께서 예술인들과의 깊은 소통의 자리를 마련하고, 한국문화를 알리고자 하는 열린 태도를 보여주신 것도 특히 인상 깊었다. 앞으로 이 공간이 전통과 창작, 세대와 세대를 잇는 예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하며, 예술은 만남에서 생동하고 그 생동이 곧 문화의 내일을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몽유도원무’는 단지 하나의 무용이 아니었다. 그것은 말없는 철학이었고,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조용히 걸어가는 몸의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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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3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