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천/치과의
어렸을 적 아버님은 귀가 닳도록 기회 있으실 때마다 족보에 대해 말씀하시곤 하셨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각자의 가계에 족보를 갖고 조상에 대한 긍지를 갖고 있겠다.
992년의 찬란한 역사를 가진 신라는 박씨, 석씨 그리고 김씨 세 성씨가 왕위를 이었는데 박씨에게서 10왕, 석씨에게서 8왕 그리고 김씨에게서 38왕이 나왔다. 경주 김씨는 신라 경순왕의 자식들 중의 한 계보이지만 김씨의 왕위는 13대 왕인 미추 니사금 때부터 시작되었다.
미추 니사금이란 말에서 보듯이 신라는 왕을 니사금(이사금)이라 불렀다. 니사금은 니(齒)의 금(흔적)을 뜻하는 닛금이란 말에서 나왔다. 서기 24년 남해왕이 임종 시 태자 유리와 사위 탈해에게 '내가 죽은 뒤에는 너희들 박, 석 두 성(性)의 연장자로서 임금의 자리를 이으라'고 했다. 헌데 그 뒤에 김씨 성(性)이 일어나 세 성(性)중에서 나이 많은 순서로 서로 임금 자리를 이어갔다. 남해왕이 죽자 유리는 탈해가 덕망이 있으므로 그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려고 했다. 그러자 탈해는 '왕이란 하늘이 내리는 것이므로 저 같이 재주가 없는 사람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성스럽고 지혜로운 이는 이(齒)가 많다고 하니 떡을 깨물어 시험하소서'하고 떡을 물어 보니 유리의 잇금이 많은지라 신하들이 유리를 임금으로 받들어 모시고 니사금이라 하였다.
유리왕 5년 겨울, 나라 안 곳곳을 둘러보다가 나이 많은 할머니가 추위와 굶주림으로 거의 죽어 가는 것을 보고 '내가 보잘 것 없는 몸으로 왕위에 올라서 제대로 백성을 다스리지 못하고 노인을 이처럼 어려움을 겪게 했으니 이것이 다 나의 잘못이 아니겠소?'하며 자신의 옷을 벗어 덮어 주고 음식을 배불리 먹게 하였다.
그리고는 관리에게 명하여 곳곳에 있는 홀아비, 홀어미, 고아, 아들 없는 사람들을 위문하고 먹고 마실 것을 주어 살아가게 하였다. 그러자 이웃나라 사람들이 이 소문을 듣고 모여들었다. 나라가 평안하고 백성이 모두 행복하게 살아가니 '도솔가'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
유리왕 34년 9월, 병이 들어 신하들에게 이르길 "탈해는 왕의 인척이 되고 그 지위가 대신의 자리에 있어 여러 번 공을 세웠다. 나의 두 아들은 탈해보다 재주가 훨씬 못 미치니 내가 죽은 뒤에는 탈해를 왕으로 삼아 나라를 다스리게 하라"고 당부했다.
우리 조상들은 임금이 되기 위해서는 건강 못지않게 덕과 지혜를 우선시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한국에서는 나라의 관심이 탄핵과 함께 온통 대통령 선거에 쏠려있긴 한데 어쩐지 개운치 않아 보인다. 각종 선동성 발언만이 난무 할 뿐 진정 국민을 위한 마음은 비어있는 듯하다.
신라시대의 이사금을 뽑듯이 구강검진이라도 한번 해보면 어떨까한다면 너무 터무니없는 생각일는지. 우리는 언제쯤이나 돼야 지혜롭고 후덕한 나라님을 가질 수 있을
2017-01-31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