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는 중간소득에 비해 주택가격이 높아서 미국 전체에서 주택소유율이 두번째로 낮은 도시이며, 50%가 넘는 주민들이 임대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파트가 늘어나도 여전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아파트는 여전히 최고의 부동산 투자처가 된다. 그러면 아파트는 언제부터 있었을까. 기원 전 고대 로마의 인슐라(insula)가 기원이다. 이 인슐라는 나무와 벽돌, 진흙으로 지어졌지만 가끔 10층이 넘는 건물도 있었다. 또 위 아래층에서 나는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을만큼 허술했다고 하니 층간소음은 아파트의 역사와 함께하는 셈이다. 그뿐 아니라 화재 문제 때문에 공동 화덕을 두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사먹기도 했고, 1층에는 상가가 있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주상복합 아파트에는 화장실이 없어 배설물을 모아 하수도에 버려야했고 간혹 창문 밖으로 쏟기도 해 애꿎은 행인들이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문학가와 웅변가로 유명한 키케로도 이때 아파트 주인이었다고 한다. 그 후 10세기 경 이집트 카이로에는 7층 높이의 아파트가 많이 있었으며 도시 주민의 다수가 그런 건물에 살았다고 한다. 11세기 기록에는 몇몇 아파트들의 높이가 14층에 달했다고 한다. 게다가 옥상에는 물레방아가 있는 정원이 있었다고 하니 이 시대의 아파트는 더 이상 도시 빈민들만의 거주지는 아니였던 것 같다. 근대적 아파트는 17세기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 시작되었으며, 계속 아파트단지가 형성되고 19세기에는 아파트 건설이 부자들의 주요 투자대상이 되면서 대규모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후에 고도제한이 풀리며 엘리베이터의 발명으로 아파트 건물들은 더욱 높아졌고 인구과밀로 인한 교통난이 심각했다. 그 후 인구 증가와 함께 부동산 투자에 따른 이윤 창출도 늘어났고, 유럽 대도시들의 아파트는 임대료를 기준으로 몇 개의 등급으로 나누어졌다고 한다. 등급에 따라 중산층을 위한 것이나 신흥부자들을 위한 고급형도 있어, 이미 이 때 화려하고 웅장한 아파트가 있었다니 요즘의 맨션아파트의 시작이다. 당시 유럽의 아파트는 로마의 인슐라처럼 계층별로 각각의 층을 사용했고 그에 따라 임대료도 달랐다. 1층은 상점이나 관리인이 상주했고, 2층은 가장 비싸기 때문에 주로 아파트 소유주가 살거나 아니면 부유한 사람에게 임대되었고, 대개 2층 전체를 주거 공간으로 사용했다. 3층부터 임대료가 싸지기 시작해 중간 수준의 소득자들이 살았고 지붕 아래의 공간인 다락방의 경우 가난한 예술가들이나 도시 상공인, 독거노인들이 사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1920년 대 프랑스의 유명 건축가인 코르뷔지에가 지금과 같은 현대적으로 구상한 계획안을 내어 놓았다. 원래 수도 파리의 빈민 구제안으로 기획된 그의 아이디어는 주거목적으로만 이루어진 보통의 아파트와 달리 한 마을을 거대한 빌딩안에 수직도시의 형태로 되살려 보겠다는 것이었다. 즉, 단지 안에 생활시설과 커뮤니티 시설을 배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밀착된 공동주거를 싫어하는 유럽인의 특성과 이미 기존 건축물로 꽉 차있는 도시의 문제로 도심안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서유럽이나 북미의 대도시에는 실제로 한국과 같은 단지형 고층아파트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그의 혁신적인 기획안은 실제로 많은 건축가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이후 프랑스 남부의 휴양도시인 마르세유에서 실현되어 많은 아파트가 건설되었다.
그러나 이후에 이런 종류의 아파트 건설은 당시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대규모로 이루어지게 되어 도시 곳곳에 삭막한 시멘트 정글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1960년대 이후 한국을 비롯, 개발도상국들은 급격한 발전 과정에서 오는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감하게 이러한 실험적인 방식을 거쳤고, 몇 번의 실패를 통해 결국 성공했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 시작된 현대식 아파트가 지금은 한국 전역에 대규모의 아파트단지로 건설되어 대표적인 주거 공간이 되었다.
한편 북한은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 평양재건에 착수하면서 다수의 공동주택을 건설했다. 당시 평양의 인구는 40만명에 달했지만 도시 전체가 쑥대밭이 된 상황이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많은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 시기에 조립식 공법을 통해 단기간에 많은 주택을 건설하였는데 현대식 아파트에 비하면 질이 현저히 떨어지지만 주상복합 형태의 공동주택이었다.
2017-06-29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