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25년 전인가보다. 미국에 갓 온 후배부부와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하려고 메뉴를 보고 있는데‘Kalbi'가 눈에 띄었다. 혹시 비슷한 요리가 아닌가 해서 설명을 읽어보니 확실히 우리의 음식인 갈비였다.
그 당시는 한국음식이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때라 신기하기도 했지만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후배가 소리쳤다."아니? '순대'도 있네요!"
정말? 다시 보니 정말 순대가 보였다. 아니, 이게 웬? 하다가 그만 웃음이 터졌다. 'Sundae'다름 아닌 아이스크림. 당시 한국에서는 그것이 아이스크림이라고는 알 수 없었겠지만 외국어도 일단은 모국어 쪽으로 기우는 의식 때문이었으리라. 그것이 모국어의 숨결이다.
그래서 점포유리창에 쓰여 있는 'Sale'을 보면 '살래?'라고 보이기도 한다면 할 말 없다.. 결국 sale이 사고파는 것이니 결과적으로 큰 문제는 없을 터.
누구는 'Hi, Jane!'을 보고 '어이, 자네'라고 인사를 하는 것으로 안다손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결국엔 인사를 서로 하는 것인 걸.
하지만 '지 놈(Genome)이 게놈(Genome)아닌감?'하는 일 까지 생기면 조금은 웃음너머 곤란한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공연히 점잖은 체면에 욕할 수는 없고 하니 시치미 뚝 떼고 '이놈 저 놈'하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해서 요새 떠도는 'needle'을 보면 그때가 생각이 나서 웃음이 절로 난다. 후배가 선배에게 '너거들'(니들)하고 부르기 좋으니 얼마나 고마운 단어인가. Needle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더하면 Needle therapist를 보고 '침 치료사'라고 읽는다면 참으로 착하고 순박하겠지만 그게 어디 그럴까? '너거들 강간범'으로도 볼 수 있다면 어떠신지.(therapist를 the와 rapist로 띄어 읽어보시라.) 혹시 Summary Terminal이 무언지 아시는 분이 계신지 모르겠다.
어떤 이는 '소머리 종합시장'으로 알았다는데. 천만에. 이는 아주 오래전 정말로 서울 인근 시(市) 행정에서 나온 웃지 못 할 해프닝이었다. '종합 터미널'을 그렇게 영역했던 것.
그렇다면 반대로 독립문이 왜 '개 갈비문'으로 역 번역이 되는지도 궁금하지 않을까? 이것도 실제 서울시 행정에서 있었던 일이라니 한번 생각해 보시도록. 하긴 중국에서도 웃지 못 할 일로 식당메뉴판에 'a chicken without sexual life'라는 것이 있는데 무엇인지 알고 먹어야 할 듯.'영계'를 그렇게 영문번역을 한 거란다. 어린 닭이니 아마도 짝짓기를 해 보지 않은 그런 뜻이었을 테니 그나마 아주 고심한 노력이 보이지 않나?
암튼 이래저래 영어가 객지에서 고생하는데 모국어와 외국어를 적당히 섞으면 아주 재미도 있긴 하지만 야한 외설이나 거북한 욕 같은 것을 우회할 수 있으니 어찌 보면 이 또한 스트레스 해소법일 수도 있겠다.
해서 캘리포니아 차량국에서는 번호판에 공적으로 허락받고 달고 다니는 외설을 찾느라 고심이 여간 아니라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단다. 세계 언어를 다 섭렵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한국판으로 'Kimchi'는 반가운데 'A 18'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외에도 'IVNIK8'가 외설적으로 심의 대상이었다는데 무슨 뜻일까? (IV는 로마자로 4를 말하니 전체 발음이 fornicate, 즉 간통한다는 뜻이다). 요새 하도 알아보기 어려운 네티즌 용어들이 판을 치는 것을 보고는 생각나는 대로 한소리 해 보았다. Amen!(이것을 '아, 남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만.
2017-07-25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