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이 점차 연장되면서 은퇴에 들어서는 한인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제는 70,80세가 아닌 90,100세 혹은 그 이상까지도 생존이 가능해지면서 전통적인 60세 은퇴의 개념이 무너지고 있다. 은퇴 이후 삶의 시간이 부쩍 연장되면서 은퇴를 둘러싸고 삶의 질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한인들도 이민 1세들이 빠른 속도로 은퇴 연령층에 돌입하게 되면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여러가지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은퇴를 앞두고 일평생 모은 재산에 대한 처리문제가 아닌가싶다. 이전에 비해 부쩍 늘어난 은퇴후 생활을 유지하려면 어떤식으로든지 오랜기간 수입이 필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모아놓은 재산이 넉넉하여 은퇴 후에도 충분한 소득이 보장된다면 좋겠지만 일생동안 모아놓은 재산이 자신의 집 한채만 있는 경우는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게 된다. 한인들의 경우 숟가락 하나라도 자식들에게 남겨주어서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유교적 사고 방식과, 은퇴 후 생활을 대비해 모아놓은 재산을 자식에게 넘기지 못하고 자신들의 생활을 위해 써야한다는 현실적인 문제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 아직은 유교적인 사고 방식이 우세하지만 한인들의 은퇴가 가속되면 일평생 모은 재산을 은퇴용으로 쓸 수밖에 없는 경우도 서서히 한인들가운데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모은 재산이 아주 많거나 혹은 아주 없거나 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고민이 많이 줄어들게 되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에 어쩡쩡한 경우에는 할 수 없이 재산을 둘러싸고 자식들과 갈등을 빚는 경우가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100세 장수가 바로 눈앞에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은퇴라는 것은 바로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후에 생활을 염려하고 걱정해야 하는 것은 이들로서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유교적인 사고로 무장된 은퇴를 앞 둔 한인들에게는 남은 은퇴 후 생활을 위해 자신들의 모은 재산 대부분을 쓰고 자식들에게 남겨주지 않은 것에 대해 상당한 심적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말은 안해도 부모에게 뭔가의 도움을 바라는 자식들로부터 눈치 아닌 눈치를 보게 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추세는 은퇴 후 뾰족한 수입원이 없는 경우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에퀴티를 담보로 매달 생활비를 받아쓰는 리버스 모기지(Reverse Mortgage)도 한인들 사이에 아주 소수이긴 하지만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또 위의 경우는 아니지만 얼마 전 필자의 고객 중 수년 전 상처한 분이 재혼을 하려고 갖고 있는 부동산처리에 대해 필자에게 상의를 한 적이 있었다. 은행 융자가 없는 자신이 사는 집과 조그만 인컴유닛을 갖고 있는데 소유권 이전 등에 대해 물어보기에 처리방법 등을 알려드렸는데, 얼마 후 전화가 와서 재혼을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유인즉, 자식들이 재혼을 함으로 자신들에게 상속될 재산이 새로 들어올 부인에게 돌아갈 수도 있는 것을 염려해서 재혼을 못하게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자식들은 표면적으로는 다른 이유를 들었다고 했지만 실상은 바로 재산을 둘러싸고 아버지의 재혼을 막은 경우가 된 꼴이다.
이렇듯 은퇴하는 한인들이 늘어남으로 주변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부모와 자식간의 재산을 둘러싼 갈등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한인 은퇴자들에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한 은퇴전문조사지의 조사에 의하면 현재 은퇴가 가장 활발히 진행 중인 베이버부머들의 약 35% 정도 만이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줄 생각을 하고 있다. 반면 자녀들의 약 70% 이상이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위의 예와 같이 주류사회에서도 부모와 자식 간의 재산문제를 가지고 2배 이상의 서로 다른 기대치를 보이고 있는데, 한인들의 경우 실제로 조사를 해 보면 이 기대치보다 훨씬 높은 숫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수명은 길어지고 은퇴 후 생활비는 계속 필요한데, 여기다 자식들의 눈치까지 보게 되면 정말 은퇴 후 생활이 서글퍼 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17-08-21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