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을 읽을 때 나는 발레를 떠올리게 한다. 발레는 우아한 몸짓으로 날개짓하는 한 마리의 백조를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아름다움 뒷면에는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수없는 동작을 반복하여 연습하고 땀 흘리며 고통과 인내의 과정을 견더야 한다. 마치 수도승처럼 고행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며 자기 수양을 한다. 그런 과정에서 행복과 불행을 알며 강인한 정신력과 내면을 통해 통찰하고 성장하기 때문에 나는 발레의 마력에 빠진다.
발레 동작을 보면 “ 아라베스크 ”가 있다. “ 손끝에서 발끝까지 인간의 육체가 그릴 수 있는 가장 길고 아름다운 수평선의 포즈” 얼뜻 보기에는 손과 다리를 들어 올리는 쉬운 동작인 것 같으나 막상 따라 해 보면 어깨가 올라간다든지 골반이 올라간다든지 무릎이 굽혀진다든지 어정쩡한 포즈를 만들게 되며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끊임없이 연습하여 등과 척추의 힘으로 움직임이 달라질 때마다 온몸에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만 가능한 동작이 바로 아라베스크다.
나는 살아가면서 삶이 힘들어질 때 위로를 받고 싶을 때 춤을 춘다. 내 인생에 슬픔일이 생겼다. 한 달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지난주에는 나의 큰 조카가 49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코로나로 인해 나는 한국에 가지도 못하고 마지막 인사도 못했다. 너무 슬프고 마음이 아파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나는 힘들때 춤을 춘다. 춤 속에서 뼛속 깊이 고통을 느낀다. 흘러내리는 눈물과 땀 속에서 자책하고 미안해한다. 발레 자세를 통해 나 자신의 삶의 무게를 되돌아본다. 끊임없이 좌우로 흔들리는 몸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는 발목과 무릎 골반의 위치, 손끝 하나, 발끝 하나 모두 신경을 써야만 한다. 어느 한 곳이라도 어긋나면 자세는 흐트러지고 만다. 아라베스크 동작을 완성하기 위해 땀 흘리며 수백 번이고 반복하는 과정이 마치 종교 의식처럼 비장하다. 발레를 통해 나는 정화되고 성숙해지고 있다.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톨스토이는 나에게 말하며 위로한다. 항상 바쁘고 의욕이 넘치고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삶이 코로나 19로 모든 것이 멈추어 섰다. 슬픔 일이 내 주위에서 생기니깐 마음이 위축되고 힘들어진다. 행복이 나에게서 떠나려고 한다. 그렇다고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 수는 없다. 나는 아름다운 아라베스크 포즈를 만들기 위해 다시 한번 마음을 다듬고 오늘도 일어서 본다.
2020-05-18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