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0년 종교적 박해를 피해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영국을 떠난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이주한 지 10년 후 또다시1000 여명의 청교도를 태우고 신대륙으로 향한 '아벨라' 호에는 이들의 지도자 목사 존 윈스럽이 있었다. 그는 갑판에서 '저 건너 새로운 언덕 위에 세상이 우러러보는 빛나는 도시'를 세우자고 설교했다.
그가 말한 '언덕 위에 빛나는 도시'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번영이 넘치는 크리스천의 이상국가에 대한 청사진이었다. 이는 종교나 인종에 상관 없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꿈꾸고 모여드는 누구나 에게 열려 있는 거룩한 곳으로 미국이 이민자들을 포용해야 한다는 정치철학이자 미국의 비전으로 이어져 왔다.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 라는 말을 자주 인용한 사람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우리가 새로운 출발을 위해 미국을 함께 구하고,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로 다시 만드는 꿈을 꾸었습니다. 우리의 국가를 전 세계의 평화를 지킬 수 있도록 강하게 만들고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라며 국민과 함께 위대한 미국을 재건하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했다.
헌데 이제 그 '빛나는 도시'로 향하는 길은 우리가 또 다시 올라가야 할 언덕으로 다가왔다.
지난 달 20일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서 자신이 쓰고 낭송한 22세 어맨다 고먼의 축시 '우리가 오를 언덕(The Hill We Climb)'에서다.
5분 40초 짜리 이 시(詩) 낭송은 전 세계인들의 가슴을 울렸다.
어맨다는 "(이곳은) 노예의 후손이자 깡마른 흑인 소녀가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도 대통령을 꿈꿀 수 있는 나라입니다. (새로 취임하는) 그를 위한 시(詩)를 낭송합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시(詩)는 '날이 밝으면 우리는 자신에게 묻는다. 이 끝나지 않은 그늘 속 대체 어디서 빛을 찾을 수 있을까?'로 시작된다. 시(詩)는 중간에 '민주주의는 잠시 멈출 수는 있어도 영원히 패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재건하고 화해하고 회복할 것입니다' 라고 끝을 맺었다.
어맨다를 발탁한 사람은 다름아닌 영부인 바이든 여사다.
30여 년간 커뮤니티칼리지에서 이민자나 소외 계층에 영어를 가르쳐 오던 중 그녀의 영상을 보고 이번에 축시 집필과 낭송을 요청했다.
LA에서 자란 어맨다는 우연찮게도 바이든 대통령처럼 말더듬증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청각장애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특정 글자를 발음하지 못하는 말더듬증을 뮤지컬 음악 등을 들으며 노래 연습을 통해 극복했다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글쓰기란 자기표현의 수단이었을 거다. 하버드 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어맨다는 2017년 미국에서 최초로 도입된 청년 계관시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취임식 후 CNN과의 인터뷰에서 시(詩) 낭독 전에 눈을 감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흑인 작가들의 딸이다. 우리를 옭아맨 사슬을 끊고 세상을 바꾼 자유 투쟁자들의 자손이다. 두려워하지 말자." 그 말을 듣던 앤더슨 쿠퍼 앵커는 몇 초간 말을 잇지 못했다.
2036년 대통령 선거에 나서겠다는 포부를 가진 그녀가 요즘 꾸는 꿈은 자신이 쓰는 시(詩)가 미국의 통합을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 미국의 자긍심과 세계에 대한 특별한 소명을 뜻하는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를 오르자고 노래한 그녀의 시(詩)가 오늘의 미국을 통합과 화해로 이끄는 빛을 발하기를 바란다.
2021-02-02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