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4세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에서 페르시아 그리고 인도에까지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고 점령지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를 남겼는데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이 이집트의 지중해 연안도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다.
헌데 알렉산드리아는 영어식 이름이고 이집트에서는 ‘알 이스칸다리야(Al-Iskandariyah)’라고 한다. 그리고 알렉산더는 앞에 알(Al)자가 없이 이스칸다리야로 부른다. 그렇게 된 연유에 대해 여러설이 있지만 알렉산(Alexander)의 앞자 알(Al)이 아랍어에서 자주 쓰이는 정관사(Al)로 오해되면서 탈락한 후 중간 발음의 'ks-'에서 k와s가 뒤바뀐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알렉산더의 이름이 이스칸드리아 혹은 조금씩 다시 변형된 형태로 대제국 곳곳에 그 자취를 남기게 됐다.
알렉산더 대제국은 지중해에서 시작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파키스탄 북쪽 인도 서북부 간다라까지였는데 동방원정의 중심지가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였다. 칸다하르(Kandahar) 역시 이스칸다르에서 재변형된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이 이루어지자 많은 그리스인들이 이곳에 살게 되면서 자연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가 융합되고 여기서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가 태어났다. 이어 헬레니즘이 다시 인도 문화와 섞여 간다라(Gandhara) 문화가 생겨났다.
그러다 보니 간다라의 불교 미술에서는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가 사천왕의 모습으로 변해 그려지는가 하면 힌두교 신들의 장군인 스칸다(Skanda) 또한 위천장군의 모습이 되었는데 스칸다 역시 이스칸다르, 곧 알렉산더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말하자면 알렉산더 대왕도 헤라클레스처럼 불교의 신으로 변신한 셈이다.
아무튼 동방원정의 가장 동쪽의 도시이자 중심지였던 아프카니스탄 남부의 칸다하르가 바로 이슬람 수니파 무장 정치조직으로 결성된 탈레반이 출발한 곳이다.
아프가니스탄은 흔히 '열강의 무덤 혹은 제국의 무덤'으로 불린다. 당대 최강국들이 이 나라에서 줄줄이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칭기즈칸의 몽골제국도 이곳에서 막혀 인도원정에 실패했으며 대영제국도 러시아의 남진정책을 막으려다가 이곳에서 좌절했고 구 소련도 이 나라를 침공해 괴뢰정부를 세우려 했지만 10년만에 손을 떼야했다. 이번에 미국 또한 20년 만에 철수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미국의 철수가 꼭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중국에게 골치덩어리를 안겨 준 꼴이라는 이유에서다. 그것은 아프가니스탄 국경선이 동쪽으로 길게 삐져나와 중국 신장 위구르와 닿아 있다는 점 때문이다. 탈레반과 위구르 분리주의와의 연대가 자칫 신장 위구르 독립 시도에 불씨가 될 수있고 이는 이어서 티베트 등 다른 소수 민족에까지 자극이 되어 분리운동에 힘을 실어주게 되면 중국에게는 생각하기 조차 싫은 끔찍한 시나리오가 되어서다.
이런 ‘이스칸다르’는 지명뿐 아니라 신무기 이름에 붙여지기도 한다. 러시아의 단거리 전술 탄도미사일과 북한의 신형 탄도미사일이 그 예다. 그러고 보면 문화 융합의 대명사인 알렉산더가 러시아나 북한, 아프가니스탄 등에서는 이스칸다르 이름으로 여전히 정복자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욕망의 그림자로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21-08-31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