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단연 세계 최고의 스포츠다. 그 어떤 스포츠도 축구만큼이나 전 지구촌의 열광과 영향력을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축구는 전쟁의 속성과도 닮았으며 또 정치색이 짙은 스포츠이기도 하다. 해서 ‘축구 전쟁의 역사'의 저자 사이먼 쿠퍼는 축구를 ‘국가간 대리 전쟁’이라고까지 했다. 일례로 네덜란드가 독일과의 경기에 목숨을 거는 것은 나치 치하에 있었던 과거를 설욕하려는 무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에 의한 감정처럼 각 나라마다 앙숙도 많아 경기를 치를 때면 그 치열한 반응이 나온다는 얘기다.
이런 일도 있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가 연패 끝에 맥없이 탈락했다. 이는 영국과의 포클랜드 전쟁 패전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월드컵 출전 차 스페인에 와서 이를 알고 받은 심리적 충격에 경기를 제대로 치르지 못해서라고 한다. 이후 두 나라는 앙숙이 됐다.
더 나아가 실제로 전쟁을 치른 역사도 있다.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두 나라는 1960년 대부터 국경선을 둘러싼 분쟁으로 사이가 몹시 나빴다. 그러다가 1970년 멕시코월드컵 지역예선 1-2 차전 경기 중 발생한 자살소동이나 집단 난투극이 국경지역의 보복살해로까지 이어지더니 결국 최종전에서 패한 온두라스는 이민정책 폐지와 함께 국경을 봉쇄해 버렸다. 그러자 엘살바도르가 온두라스에 선제공격과 동시에 침공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었던 거다.
반대로 축구가 전쟁을 멈춘 일도 있었다. 아프리카 남서부에 있는 코트디부아르는 2002년부터 계속된 내전으로 수만 명이 숨지는 등 큰 혼란에 빠진 상태에서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최초로 출전하게 되었다. 이 때 ‘축구의 신’ 드로그바가 무릎을 꿇고 ‘본선 진출로 기뻐해야 할 지금 조국은 내전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적어도 일주일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춰주세요’ 라고 호소했다. 그러자 이에 정부군과 반군 모두가 감동되어 실제로 그 후 1주일 동안 건국 최초로 총성이 멈추더니 2년 뒤 내전은 종식되었다. 본선 진출보다 더 위대한 신화를 이룩해 낸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스토리가 되었다.
이렇듯 축구는 운동 그 자체를 넘어 국가들의 역사적, 정치적으로 그 감정이 매우 민감하게 얽혀있는 스포츠다. 마침 설이었던 지난 1일 벌어진 한국, 중국, 베트남의 축구가 화제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최종 지역 예선경기에서 한국은 월드컵 본선 10회 연속 출전이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헌데 더 관심을 끄는 것은 중국과 베트남이었다. 1956년 이후 베트남에 무패였던 중국이 이번에 패한 충격에 나라 전체가 침울한 가운데 축구팬들은 대표팀에게 여러 악담을 퍼붓는가 하면 한 축구팬은 TV도 때려부쉈다.
축구에 소림사 무술 정신을 더해 축구굴기를 외쳤던 시주석의 야심찬 소원을 위해 축구를 초·중 과정의 필수과목으로 지정했고, 중국 전역에 2만여 개의 ‘축구학교’를 세운다는 계획하에 추진해 오던 중국의 자존심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헌데 이상한 것은14억 인구가 그토록 축구에 열광하고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는데도 중국 축구가 바닥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인데 이를 두고 타임지는 ‘중국 축구의 미스터리’라고 했다. 허긴 ‘중국의 부진한 축구 실력의 원인을 규명만하면 노벨상감’이란 우스갯소리도 나오는 판이나 그럴만도 하겠다 싶다.
2022-02-15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