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임금이 있는 곳을 가르키는 궁궐 안에는 여러가지 궁이 있다. 왕이 거처하는 정궁(법궁), 상왕 혹은 대왕대비가 머물거나 왕이나 왕세자 비를 맞아들이기 위한 별궁, 정궁에 변고가 있거나 왕들의 요양을 위해 잠정적으로 머무는 행궁(行宮) 혹은 이궁(離宮)이 있다. 이 중 정궁은 그야말로 왕실의 으뜸 궁궐로 임금이 정사를 돌보고 생활하는 곳이고 이궁은 일종의 정궁을 보조하는 궁궐이다.
1104년, 고려 숙종이 나라에 여러 재난이 계속되자 이를 막기 위해 풍수지리설을 좇아 북악산 남쪽에 이궁(離宮)을 세웠다. 조선 개국 후 태조는 경복궁을 창건하면서 이곳을 후원으로 사용했는데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던 터에 태종이 이곳 숲을 지나다 변을 당할뻔 한적도 있었다는 일화도 있다.
그러다가 일제는 조선왕조의 상징인 경복궁을 가로막아 총독 관저를 짓고 뒤편에 총독 관사를 두었다. 북악산과 남산을 잇는 산의 정기가 흐르는 줄기를 잘라 왕실의 기와 민족정기를 말살하려 했던 것이라 한다.
이 후 해방이 되자 미 군정 사령관 관사로 사용됐다가 정부 수립 후엔 이승만 대통령이 사용하면서 옛 이름대로 다시 경무대로 불렀고 4·19혁명 뒤 윤보선 대통령은 관저 지붕의 푸른빛 기와에서 이름을 따 청와대로 바꿨다.
헌데 지금의 청와대의 웅장한 한옥식 본관이 ‘구중궁궐’의 권위주의 이미지를 풍긴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자 대선 후보들이 청와대 이전을 단골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매번 수포로 돌아갔다. 이런 ‘900년 금단의 지역’이 며칠 후면 일반에 개방되고 대통령 집무실은 용산으로 옮겨간다. 74년 만이다.
이에 따라 대통령 새 집무실 명칭에 대한 관심이 화제다. 주한 미군들은 한국어 지명을 자신들이 발음하기 쉽게 영어식으로 바꾸어 부르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동두천은 영문 이니셜로 TDC라고 하는 가하면 용산(龍山)은 한자 지명의 뜻을 따라 ‘드래건 힐(Dragon Hill)’로 부른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 동안 청와대(Blue House)를 가리켰던 ‘BH’대신 요즘은 ‘DH’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고 한다. 헌데 이것이 드래건힐(Dragon Hill)의 약자 DH인지 용산(龍山)과 청와대(Blue House)의 합성인 ‘DH’(Dragon House)의 DH인지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국민의 집’이라는 의미인 ‘피플스 하우스(People’s House)’ PH가 제안되기도 했다.
단어는 다르지만 백악관은 원래 ‘대통령의 집(President’s House)’ PH 였다. 이름처럼 대통령 집무실 겸 숙소였다. 1812년 영국과의 전쟁 때 영국군이 불을 질러 시커멓게 탄 외벽을 백색 석회로 단장하면서 1901년 공식 명칭으로 채택했다. 프랑스의 ‘엘리제(Elysee)궁’은 샹젤리제 거리와 가까워 붙은 이름이고, 영국 총리 집무실은 거리명대로 ‘다우닝가 10번지’다. 중국 주석의 거주 집무실은 ‘중난하이(中南海)’다. 베이징의 큰 호수인 ‘중해’와 ‘남해’ 사이에 위치해 있어서다. 러시아 대통령궁은 높은 성벽, 성채라는 뜻의 ‘크렘린(Kremlin)’이다. 북한 김일성의 집무실은 주석궁(금수산태양궁전)이었지만 김정일과 김정은은 노동당 1호 청사를 쓴다. 하지만 진짜 집무실은 지하 깊은 곳에 있다고 한다.
윈스턴 처칠이 ‘사람이 건물을 짓지만, 건물은 사람을 만든다’고 했듯이 장소나 용어 그 어느 것이든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실제로 국민과 함께하며 국민을 섬기려는 정신에서 나오는 리더십일 게다.
2022-05-17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