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소련의 적대감이 최고조였던 1983년 9월26일 자정이 지난 한 밤중, 모스크바 교외 비밀 방어사령부 벙커 안에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계기판 빨간색 버튼에 ‘시작’, ‘발사’라는 글씨가 떴다. 미국이 쏜 핵 미사일 1기가 소련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 레이더에 포착된 것이다.
일촉즉발 상황에 핵전쟁 관제센터 당직자 모두 혼란에 빠졌다. 헌데 1기만이 아니라 5기가 포착됐다. 적국의 미사일이 발사되면 크렘린은 30분 안에 보복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담당 장교에게 남은 시간은 15분. 이 안에 비행물체들이 정말 미사일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상부에 보고해야 했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5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남은 시간은 10분.
당직 장교 손가락 하나에 인류 멸망의 여부가 달린 셈이었다. 상황이 매우 급박했지만 그는 침착하고 신중했다. 여러 자료와 정황을 종합해 위성경보시스템의 오류로 판단했다. 그리곤 상부에 전화를 걸어 ‘컴퓨터가 오작동한 것 같다’고 보고했다. 페트로프 중령이었다.
미사일 경보는 소련 위성이 구름에 반사된 햇빛을 잘못 감지된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판단은 옳았지만 후에 그는 ‘경보기가 울릴 때 나는 이를 최고 사령관에게 직통전화로 보고하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나는 움직일 수 없었고, 무서워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고 토로했다.
마침 적색경보가 울리기 3주 전 소련은 미국 정찰기로 오인해 승객 269명이 탄 대한항공 007편을 격추시켰다. 이때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불렀다. 더구나 그 해 NATO는 전면적 선제 핵 공격에 대한 대규모 군사훈련도 예정해 두고 있었고 소련은 미국이 핵 공격을 계획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이 핵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고 판단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던 상황이었다.
만일 이 때 페트로프 중령이 이 사실을 그대로 상부에 보고했다면 소련은 즉각 핵미사일로 반격에 나섰을 것이고 인류는 핵전쟁에 휩싸일 뻔했던 거였다. 결국 그는 수사관들에게 심문받고 책임을 추궁 당한 뒤 조기 전역 조치됐다.
소련은 시스템 결함을 숨기기 위해 이 사건을 비밀에 부쳤고 그의 업적은 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15년 후 이 사건의 비밀이 해제되면서 독일 일간지가 ‘핵전쟁을 막은 남자’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알렸고 2014년에는 다큐멘터리영화 ‘세계를 구한 남자’도 나왔다.
페트로프 중령은 아내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은 채 연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가난하고 조용한 삶을 살다가 2017년 세상을 떠났다.
1962년 10월, 소련이 쿠바에 설치한 핵미사일을 미국이 탐지하면서 ‘쿠바 미사일 위기’가 시작됐다. 당시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섬을 봉쇄하고, 핵전쟁을 각오하는 초강수를 선택하자 소련은 쿠바에서 핵미사일을 철수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60년 후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세가 불리해지자 노골적으로 핵으로 위협하고 있다. 쿠바 위기에 대한 책을 쓴 저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지도자가 수모당할 궁지에 몰리면 위험한 도박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지구 최후의 날을 막은 페트로프 한 사람의 냉철한 판단과 용기가 모두의 생명을 구했다는 사실은 반대로 단 한 사람의 오판이나 단순한 기계적 오류만로도 대재앙의 위험 아래 살고 있음을 말해주기도 하는 거다. 핵무기가 언급되고 있는 지금 그의 존재가 새삼 부각되는 이유다.
2022-10-18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