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의 거목 고(故) 박완서 작가는 1950년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곧이어 일어난 6.25전쟁으로 오빠를 잃고 갖은 고생을 하다가 생활고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그리고는 집안살림을 책임지게 된 어린 나이에 미군부대 PX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미군병사들의 가족이나 여자 친구의 사진으로 인물화를 그리는 주문을 받아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초상화를 그리는 중년의 화가들에게 넘겨주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화가들을 극장 간판이나 그리는 정도의 수준으로 여기며 하찮게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중 한 사람이 그림 하나를 옆구리에 끼고 와서 자신의 작품이라고 보여준 것을 계기로 해서 그의 실력과 인품을 접하면서 서로 가까워지고 존경하게 된다. 박수근 화백이었다.
그의 대표작으로 ‘나무와 두 여인’이 있다. 꽃도 잎도 열매도 없이 앙상한 가지만을 드러낸 채 벌거벗고 서있는 나무와 그 옆을 지나는 혹독하게 추운 김장철 두 여인의 그림이다. 죽은 고목(枯木)같은 나무를 가운데 두고 양옆에서 각자의 분주한 삶을 향하는 여성들은 이와달리 강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헌데 이 그림은 박완서 작가의 손을 거치면서 또 다른 이야기로 변신한다. 전쟁이 끝난 후 결혼한 박완서는 4남매를 낳고 양육시키면서 평범한 가정주부로 생활하던 중 김장철이 지나고 다소 한가해진 어느 겨울날 자서전적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박수근 화백과의 추억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소설 ‘나목(裸木)’이 그것이었다. 문단에 데뷰하던 그때가 40세였다. ‘벌거벗은 나무’ 나목(裸木). 전쟁으로 인해 헐벗고 굶주린 삶을 살아야만 했던 우리민족의 모습을 그려낸 이야기다.
이로써 박수근 화백의 그림 속에서 지난 날 죽은 줄 알았던 고목(枯木)이 김장철 삶속의 나목(裸木)으로 되살아나면서 절망에서 희망으로 상황은 반전된다. 그것은 비록 헐벗을지언정 좌절하지 않고 의연하게 일어설 수 있게 해준 ‘다가올 봄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겨울을 나기 위해 한때 화려했던 자신의 모든 외형을 다 벗어버리고 침묵하면서 고독하지만 아직 도래하지 않은 봄을 바라며 오래 참고 기다리는 나무. 결코 포기하지 않는 정열과 잉태할 새생명을 안에서 숨기고 있는 나무이었기 때문이다.
두 작가의 나무에서 새해를 맞는 우리는 또 다시 새희망을 상기하게 된다. 계절이 바뀌면 앙상한 가지에 푸르른 새로운 잎이 돋아난다는 불변의 희망, 해서 나목이 견딜수 있었던 긴 고독과 인내끝에 오는 봄에 대한 믿음을 말이다.
그래서 그럴까?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조용히 자신을 성찰하면서 새해의 희망을 찾으란 메시지로12월을 ‘침묵하는 달’로 맞이한다. 현재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고 더 나은 자신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란다.
세상의 모든 것이 바뀌어도 더 나은 새해를 바라는 마음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 이제 떠나 보내는 올 한해 얼마 남지않은 세모의 끝자락에서 우리 모두 더 따뜻하고 희망차며 더 밝은 새날을 맞이하기 바란다.
2022-12-30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