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 전기차 화재 관련 사실관계 '바로잡기'

전기차 화재 1만대당 1.32건, 비전기차 1.86건…"배터리 원인 화재사례는 더 적어"

"실내주차장 화재 피해, 차종보단 스프링클러 작동여부 관건"

(서울=연합뉴스) 임성호 기자 = 잇단 전기차 화재로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확산하는 가운데 현대차·기아가 29일 잘못된 정보에서 비롯된 오해를 불식시키는 데 발 벗고 나섰다.

전기차 관련 위험성이 부풀려진 측면이 있는 만큼 명확한 사실관계 알려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겠다는 의도다.

현대차·기아는 인천 전기차 화재 이후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했고, 전기차 안전의 핵심 기술인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을 소개하는 등 '전기차 바로 알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 '전기차에서만 불이 자주 난다?'…내연차 화재가 더 많아

현대차·기아는 이날 배포한 참고자료를 통해 '전기차는 화재가 많이 발생한다'는 인식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9∼2023년) 자동차 화재는 비(非)전기차와 전기차를 합해 매년 4천500건 이상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하루 13건꼴인 4천800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다만 연도별 자동차 누적 등록 대수를 기준으로 산출한 1만대당 화재 건수는 지난해 기준 비전기차는 1.86건, 전기차는 1.32건이다.

또 소방청의 화재 통계는 충돌과 외부 요인 등에 따른 화재를 모두 포함하고 있고, 초소형 전기차·전기화물차, 전기삼륜차까지 함께 집계한다.

이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승용 전기차에서 고전압 배터리가 원인이 돼 화재가 난 사례는 훨씬 줄어든다고 현대차·기아는 강조했다.

◇ "전기차 화재 진압 어렵다?"…최신 전기차, 열폭주 전이 지연기술 탑재

'전기차 화재는 열폭주 때문에 진압이 어렵고, 차량이 전소돼야 불이 꺼진다'는 주장도 일부만 맞다고 현대차·기아는 밝혔다.

열폭주는 배터리가 과열돼 주변으로 열을 옮기며 급속히 연쇄 폭발하는 현상이다. 다만 이런 열폭주는 외부 요인으로 발생하는 대부분의 전기차 화재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배터리팩은 고도의 내화·내열성을 갖춰 배터리 이외 요인으로 화재가 발생했을 때 불이 쉽게 옮겨붙지 않는다. 최신 전기차에는 배터리에서 불이 났을 때도 열폭주 전이를 지연시키는 기술이 탑재돼 화재 확산을 방지할 수 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지난해 7월 '전기차 화재 진압 시연회'에서 "전기차 화재의 초진이나 확산 차단이 내연기관 차량보다 더 어려운 것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화재 완전 진압까지 걸리는 시간이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더 길어 피해가 크다는 것도 오해라고 현대차·기아는 밝혔다.

전기차 화재의 경우 초기 진압이 단시간에 이뤄졌더라도 소방은 이후 배터리 화학 반응에 대비해 차량을 일정 시간 소화수조에 담가 놓거나 질식포로 덮어 모든 배터리 에너지가 소모될 때까지 관리한다. 이때는 화재가 확산되지 않는다.

현대차·기아는 전기차 화재 진화 매뉴얼이 마련되고, 소방 기술 발전에 따라 전기차 화재 진압 시간이 점차 짧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 "전기차 불이 유독 빨리 퍼진다?"…배터리 열량, 가솔린 열량의 9분의 1

전기차 화재가 유독 확산 속도가 빠르고, 내연기관차 화재보다 온도가 더 높게 치솟는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고 현대차·기아는 설명했다.

배터리 1kWh(킬로와트시)의 열량은 3.6MJ(메가줄)로, 가솔린 1L의 열량 32.4MJ의 9분의 1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같은 용량이라면 열량이 높은 연료를 실은 내연기관차의 화재 확산 속도가 더 빠르고 차량 외부 온도도 더 높이 오르는 편이다.

한국방재학회는 지난 2021년 '전기차와 가솔린차의 실물화재 비교 분석' 논문 실험을 통해 이를 검증한 바 있다. 폭발 위험에 대비해 3L만 주유한 구형 레이 가솔린차와 NCM(니켈·코발트·망간) 16kWh 배터리를 100% 충전한 구형 레이 전기차가 실험에 쓰였다.

그 결과 두 차량 모두 실내는 1천300도 수준이었지만, 외부 온도는 가솔린차가 최고 935도, 전기차는 최고 631도로 크게 차이났다.

◇ "실내 車화재 확산, 연료와 무관…스프링클러 작동이 중요"

지하주차장 등 실내에서 자동차 화재가 발생한 경우 연료 종류와 무관하게 스프링클러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현대차·기아는 밝혔다.

한국화재소방학회가 지난 4월 펴낸 논문에 따르면 스프링클러 작동만으로도 인접 차량으로의 화재 전이를 차단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실제로 지난 5월 전북 군산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해 45분 만에 진화되며 화재 피해를 최소화했다.

반면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경우에는 내연기관차 화재더라도 피해 규모가 컸다.

2022년 대전 한 아웃렛 지하주차장의 1t 트럭에서 시작된 화재로 7명이 숨진 사고나, 2014년 경기 용인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120여대의 차량이 피해를 본 사고 등 내연기관차 화재로 대형 피해가 발생한 사례에서는 모두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

실내에서의 화재 피해 규모는 발화 요인이 아니라 스프링클러의 정상 작동 여부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다.

◇ "배터리 충전량 제한, 근본 화재 방지 대책 아냐"

최근 서울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배터리 충전량(SoC) 90% 이하의 전기차만 공동주택 지하주차장 출입을 허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나, '충전량 제한'은 근본적인 화재 안전 대책이 될 수 없다고 현대차·기아는 밝혔다.

현대차·기아 등 자동차 제조사들은 전기차 배터리를 100% 충전해도 충분한 안전범위 내에서 관리되도록 설계하고 있다.

배터리 및 자동차 제조사는 배터리의 내구 수명을 확보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내구 성능 마진을 두고 있다. 고객에게 안내하는 시스템상의 '100%'는 실제로는 '100%'가 아닌 셈이다.

또 BMS가 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 용량을 재산정하는 리밸런싱 작업을 통해서도 추가적인 마진을 확보한다.

일반적으로 배터리 충전량은 총열량과 비례해 화재의 규모나 지속성에는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배터리 화재의 원인은 배터리 충전량 자체와는 관계없는 셀 자체의 제조 불량 또는 외부 충격 등에 의한 내부적 단락이 대부분이라고 현대차·기아는 밝혔다.

과충전에 의해 전기차 화재가 일어난 사례도 전무하다.

국내 배터리 전문가인 윤원섭 성균관대 에너지과학과 교수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가 100%라고 말하는 것은 안전까지 고려한 수명"이라며 "배터리를 100% 충전하면 위험하다는 것은 일반인이 주로 오해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전환'은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 감축을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라는 점에 전 세계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현대차·기아는 밝혔다.

한국도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을 극복하고 전기차 시대에 발맞춰 합류하기 위해선 잘못된 정보의 확산을 막기 위한 제조사, 정부를 비롯한 사회 각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대차·기아 관계자는 "배터리 셀 제조사와 함께 품질을 철저히 관리하고, BMS를 통한 사전 진단으로 더 큰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배터리 이상징후 통보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비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