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지난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에게 0.73% 포인트 차이로 석패했다. 그러자 2.73%를 득표한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게 민주당 일각에선 패배의 원흉이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심 후보에게 간 표가 사표(死票)라고 주장하면서다. 그러나 심 후보는 패배 연설에서 대선 결과를 존중한다면서 "지지율이나 유불리에 연연하지 않고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 그리고 정의당의 역할에 대해 소신과 책임을 지고 말씀드렸다"고 했다. 진보 정치인으로서 원칙과 신념을 지키겠다는 의지와 책임감을 다시 한번 드러낸 셈이다.

■단일화 여부와 사표

사표론은 여야나 진보 또는 보수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 이번 대선에서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간 단일화 여부가 막판 큰 변수가 되면서 어김없이 사표론이 나왔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25일 "이준석에 대한 투표는 사표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했다. 이에 이 후보는 "명시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혀준 홍 전 시장에게 감사드린다"고 응답하면서 대선 레이스 완주 의지를 다졌다.

■군소정당 득표는 죽은 표?

사표는 낙선한 후보자에게 간 표를 말한다. 낙선으로 릫유권자의 의사 표시가 반영되지 못한 표릮를 죽은 표라는 뜻에 비유해 쓰는 용어다. 거대 양당이 주도한 우리나라 선거 역사에서 늘 등장한 사표론은 군소정당에 표를 주면 그 표는 죽은 표가 된다는 정치적 주장이다. 선거를 통해 다양성이 표출될 수 있는 다당제가 자리 잡게 어렵게 만드는 심리적 이유 중의 하나다. 그간 거대 양당은 적대적 공존 관계를 유지하면서 기득권을 지켜왔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선거 때마다 사표론을 들먹였다. 물론 사표를 줄이거나 없앨 수 있는 선거 제도상의 장치들이 있음에도 도입하기를 꺼렸다.

■2002년 권영길의 완주

결국 사표라고 불리는 표도 해당 선거 후 정치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유효표로 보는 것이 맞다. 소위 소수 정당에 간 릫사표릮가 다음 선거에 영향을 미친 사례로 2002년 대선이 꼽힌다. 당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릫권영길에게 투표하면 노무현 표를 깎아서 이회창이 된다릮는 사표론으로 홍역을 치렀지만 완주했다. 3.89%를 득표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2004년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 13%를 얻으면서 국회의원 10명을 배출했다. 대선에서 권 후보에게 간 표가 진보정당 국회 진출의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꿀리지 않는 정의당 후보

이번 대선 TV 토론도 마찬가지다. 후보들이 서로 공방을 벌이며 유권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무대인 TV 토론에서 권영국 민주노동당(전 정의당) 후보가 유력 후보들이 외면하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도 이전 선거의 힘이다. 3년 전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이 광역의원 비례대표 득표율 4.14%를 기록해 TV 토론 참가 자격(전국 단위 선거 득표율 3% 이상)을 얻었다. 권 후보가 이번에 3%를 득표하면 다음 대선에서도 같은 당 후보가 TV 토론에서 진보적 가치를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유권자들의 ‘사표’ 고민

유권자들은 선거 때마다 사표 방지 심리에서 고뇌하게 된다. 이번 대선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다만 이른바 진보 진영에서는 고민이 좀 덜하지 않을까 싶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스스로 릫중도 보수릮라고 말했듯이 이전 대선보다 한참 우클릭한 모양새라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