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구 미국정치학회장, 美 한인 정치 참여 변화 주목할 만

"10년간 두 명의 대통령 탄핵…한국 민주주의 역동성에 감탄"

"인종과 정치적 성향에 따라 추방 여부가 결정되는 경향도 있어 심각한 인권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세계정치학회 서울총회 참석차 모국을 방문한 이태구 미국정치학회 회장(하버드대 인문학부 교수)은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소노펠리체 컨벤션에서 열린 재외동포청·한국정치학회 공동 리셉션에 참석해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번 방한은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며 "부모님이 생전에 선택했던 미국 이민의 길이 이 자리에까지 이어졌다는 생각에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UC버클리 로스쿨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20년 가까이 후학을 길러온 정치학자다. 연방 센서스국의 자문위원, 아시안 아메리칸 퍼시픽 아일랜더(AAPI) 시민참여연대 수석 펠로, 미주한인정치연합(KAPA)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인종과 민족, 이주와 정체성, 정치·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집중 연구해 왔다.

그는 먼저 오랫동안 한국계와 아시아계 미국인의 정치 참여가 낮았던 이유로 "양당 모두 아시아계를 유권자로서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백인, 흑인, 라티노는 정치적으로 조직화해 있지만, 아시아계는 수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무게감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10~20년 사이 이러한 흐름에는 변화가 일고 있다고 했다. 이 회장은 "한국계 미국인들이 미국에 장기 정착하면서 경제·교육적 성공을 넘어 정치적 권리와 영향력 확보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다"며 "정치 참여가 곧 새로운 사회에서 소속감을 보여주는 방식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2016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혐오범죄와 인종차별 증가가 정치 참여의 강력한 계기로 작용했다. 이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과 아시아계 대상의 혐오가 증가하면서 위기의식이 고조됐다"며 "NGO와 지역단체들의 지원으로 한국계와 아시아계 유권자들이 조직적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정치적 희망보다도 생존의 위협이 행동을 이끌었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혐오범죄가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을 심화시키며 정체성 정치의 확산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이 회장은 또한 보편적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특히 미국의 부의 불균형은 매우 심각하며, 이에 따라 민주주의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상위 1%가 하위 20%보다 훨씬 많은 부를 보유한 현실을 지적하며, 부의 재분배와 보편적 건강보험, 교육 정책의 강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최근 논란이 되는 미국 내 서류 미비 등으로 추방 대상인 한인들의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는 우려를 표했다. 이 회장은 "약 20만 명의 한국계가 추방 위험에 노출돼 있으며, 이는 단지 불법체류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며 "인종과 정치적 성향에 따라 추방 여부가 결정되는 경향도 있어 심각한 인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해결책으로는 한국 정부의 외교적 대응과 한인 커뮤니티의 조직적 행동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외교부와 재외동포청이 적극 개입해 보호 조치를 마련해야 하며, 현지 한인들도 연대해 정치적 힘을 키워야 한다"면서 국제 동맹 속에서 공동 대응하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차세대에게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폭넓은 시각을 갖고 정확하게 관찰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정보를 선별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할 줄 아는 능력이 앞으로 민주사회를 유지하는 데 핵심"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지난 10년간 두 명의 대통령을 탄핵한 사건은 미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며 "한국 민주주의의 생동성과 역동성에 깊이 감탄한다"고 평가했다.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phyeons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