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는 분이 언젠가 식당에 갔다가 경험했던 일이라고 합니다. 30대의 한 젊은 부인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서 식사를 하는데 아이가 식당 안에서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녔던 모양입니다. 이를 보다 못한 연세가 지긋한 한 남자분이 아이의 엄마에게 주의를 줄 것을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젊은 부인은 당신 일도 아닌데 참견 말라고 하면서 오히려 무안을 주더라고 합니다. 이분은 적반하장인 젊은 부인의 무례함을 참기가 힘들었다고 하면서 많이 분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젊은 엄마는 이렇게 함으로서 자신의 아이에게 사랑을 다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무조건 감싸주고 떠받드는 것은 온전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에는 자유 하는 것 이상으로 이에 따르는 책임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을 위해서는 용납과 관용도 필요하지만 악을 미워하고 응징하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용서와 더불어 잘못에 대한 징계도 필요하다는 사실도 생각해 봅니다. 진정으로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의 잘못을 용납하는 것 이상으로 꾸지람도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할아버지 수염을 잡고 버릇없이 구는 손자를 보면서 나무랄 줄 아는 사랑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인류에게 사랑을 가르치면서 이에 따르는 자유와 책임의 양면을 완벽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인생을 죽도록 사랑하시되 그들에게 있는 죄는 그림자도 용납하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죄인을 죽음에서 살리시는 사랑과 그들에게 있는 죄를 철저히 심판하시는 양면적인 사랑을 가지고 찾아오셨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이루셨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사랑으로 다가감과 동시에 천방지축인 자식에 대해서 매서운 회초리를 드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죄 중에 뻔뻔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공의가 있는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2015-10-08 04: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