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석/목사·수필가
조선 숙종 때 당하관 벼슬에 있던 이관명이 암행어사가 되어 지방을 시찰하고 돌아왔습니다. 왕이 고을마다 민폐 여부를 묻자 곧은 성품을 지닌 그는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한 가지만 아뢰옵나이다. 통영 관청에 속한 섬 중 한 곳이 무슨 영문인지 후궁 한 분의 소유로 되어 있습니다. 헌데 그 섬 관리의 수탈이 너무 심해 백성들의 궁핍을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숙종은 "과인이 그 작은 섬 하나를 후궁에게 준 것이 그렇게도 잘못된 일인가!"라고 벌컥 화를 냈습니다. 궐내의 분위기가 싸늘해졌지만 이관명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다시 말했습니다. "전하의 지나친 행동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누구 하나 이를 막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저를 비롯해 이제껏 전하께 직언하지 못한 대신들도 함께 법으로 다스려 주십시오." 왕은 승지를 불러 전교를 쓰도록 했다. 신하들은 이관명에게 큰 벌이 내려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숙종은 그를 예조 참판에 임명하면서 "경의 간언으로 과인의 잘못을 깨달았소"라며 자신의 과오를 뉘우쳤다고 한다.
왕의 잘못을 지적한 이관명의 용기도 훌륭하지만 충직한 신하를 알아보는 숙종의 안목도 더없이 귀합니다. 거짓과 배신이 난무하는 가운데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뿐더러 이런 사람을 알아주지 않는 현실 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정의와 정직이 대접받고, 이성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일 것입니다. 한국의 현실을 볼 때 숙종이나 이관명 같은 지도자와 참모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종대왕이 남긴 말 한마디가 새삼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대소 신료들은 제각기 위로 왕의 잘못과 아래로 백성들의 좋고 나쁨을 거리낌 없이 직언하여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걱정하는 나의 지극한 생각에 부응되게 하라."
2016-12-08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