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석/목사·수필가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가 산책을 하다가 동네 골목에서 한 소년이 울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유를 배달하던 그 소년이 실수로 넘어지는 바람에 우유병을 통째로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소년은 깨진 우유를 배상해야 한다는 걱정에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었습니다. 랑케는 울고 있는 소년에게 다가가서 "얘야,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지금은 가진 돈이 없지만 내일 이 시간에 여기 오면 대신 배상을 해주겠다"면서 달랬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랑케는 한 자선사업가에게서 온 편지를 받았습니다. 역사학 연구비로 거액을 후원하고 싶으니 내일 당장 만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기뻤지만 순간 소년과의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자선 사업가를 만나려면 소년과의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랑케는 즉시 자선사업가에게 다른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만날 수 없다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자선 사업가는 순간 불쾌했지만 전후 사정을 알고는 랑케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고 처음 제안보다 더 많은 후원금을 보냈습니다. 랑케는 이처럼 작은 약속을 지키는 일도 역사학을 연구하는 것 못지않게 소중히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화에서 비록 작은 약속이라도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교훈을 배웁니다. 눈앞의 큰 이익을 저버리면서까지 약속을 소중히 지킬 줄 아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은 약속을 가볍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작은 약속이지만 소중히 여길 때 그만큼 삶은 윤택해질 수 있습니다. 약속을 지킨 랑케가 뜻하지 않은 후원금을 얻었듯이 약속을 충실히 따르는 사람에게는 하늘의 보상이 있게 마련입니다.
2017-01-11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