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석/목사·수필가
가진 것을 모두 쓰지 않고 여분의 것을 끝까지 남겨둘 줄 아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할말을 남겨두고 그리움을 남겨두며 사랑이나 정이나 물질이나 건강도 남겨둘 수 있어야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리면 공허가 찾아올 뿐이고 마음을 모두 주면 허탈감이 밀려올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을 다해버리고 나면 찾아오는 아픔이 많아 울게 되고 가진 것을 다 써버리면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기쁨이나 슬픔도 마음에 간직할 정도로 조금 남겨두고 감추어 두면 더 아름다워지는 법입니다.
대가족인 우리 가정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일입니다. 할아버지는 진지를 드시면서 항상 밥 주발 귀퉁이에 두세 숟갈 정도 밥을 남겨두시곤 했는데 그 맛이 참 일품이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남겨진 것에 대한 아름다움도 이와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랑도 여유를 가지고 은은하게 남겨줄 수 있는 사랑이 오래갑니다. 기다림 속에 만나는 사람이 오랫동안 우정을 나눌 수 있듯이 오래 참으며 인내할 줄 아는 사랑은 아름답습니다. 세월을 따라서 스쳐 지나가는 사랑이 아니라 모자란 듯 은근한 냄새를 남기는 사랑이 귀하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평생 사랑을 받고 살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릴 때는 부모님께 사랑받고 싶어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친구에게 사랑받고 싶어합니다. 결혼 후에는 배우자에게, 노인이 되면 자식들에게 사랑을 받기 원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사랑을 받을 때보다 줄 때 우리 삶은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나눔으로써 기쁨이 커지고 행복이 더한다는 말입니다. 아이리스 머독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사랑을 함으로써 사랑을 배울 수 있다."
2017-01-26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