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서 시력이 나빠지는 건 자연의 추세다. 특히 눈동자 부위에 하얗게 백태가 끼여 안구내 수정체가 흐려져 시력이 나빠지는 걸 노인성 백내장이라고 한다. 우리 한민족의 조상이 있어 지금의 한민족이 존재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 때문인지 우리의 조상 특히 고대 한국인의 조상들에 대한 역사적 인식에 소홀하다. 아직도 단군이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고 수 천년 이어온 고조선 역사를 깡그리 부정하는 사학자들이 적지 않다.
이를 한국 고대사 인식의 장애물이라고 볼 때 역사 인식에 백내장 처럼 작용하는 주된 요인들을 몇 가지 정리해 볼 수 있다.
가깝게는 일제 치하에 익숙해진 식민지 사관이 그것이고, 멀리는 삼국시대 이전 한자 수용이 가져온 문화적 전환이다. 고조선 시대부터 수용된 한자는 정치 역사 및 문화 등을 기록으로 남기는 데 일정한 프리즘으로 작용하게 된다. 일단 한문을 받아들인 이상 중국 중심의 언어와 사관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 이래 모든 역사서들이 그렇게 쓰여졌기 때문이다. 한자의 어원은 금문과 갑골문으로서 상나라를 세운 동이족에서 연원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자가 한족이 중심이된 중원 대륙에서만 사용된 것이 아님을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고조선이나 부여 등이 국가 체제를 갖추었다고 볼 때 그 시대에 한문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단정 짓는 것도 무언가 이상하다. 기록된 동아시아 최초의 법이 고조선의 팔조금법이라는 건 상식에 속한다.
우리가 수 천년 전의 역사를 추리하면서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들이 있다. 식민지 사관과 중화 위주의 한자 사관을 벗어나기 위해 우선 이러한 함정들을 몇 가지 지적하자면 ▲근대 국가의 개념으로 옛날 부족 연맹이나 국가를 이해하려는 것 ▲2000여년 전의 중국을 지금처럼 하나의 국가 체제로 이해하려는 것 ▲고대 국가를 한 곳에 고착된 상태에 있는 것으로 이해하려는 것 등이다.
오호 (흉노 선비 저 갈 강) 십육국의 前秦 (351-394)이 그러하듯 서북방 민족이 중원 가까이 국가를 경영하면 반드시 한족의 문화에 동화되고 말았던 이유는 유목민이 농경민으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이다. 하지만 동북방의 민족들은 일방적으로 한족에 동화되지만은 않았다. 한민족이 내몽골 홍산지역에서 북만주로 만주로 또 한반도로 종래에는 일본 열도로 이동해 가며 국가를 경영하고 각축해 가면서 정착해나가는 다이나믹한 과정이 한국 고대사이다.
고구려가 투르크 국왕의 장례에 최우선으로 거명될 정도로 국빈 대접을 받았던 이유는 무얼까? 西安의 碑林 박물관에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제가 흉노의 후손이라고 적혀있는 이유는 무얼까? 또 현대 몽골인과 한국인들의 유전자 지도에서의 근접성은 무엇 때문일까? 이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고대사 인식의 장애물을 걷어내고 고조선 문명을 바로 이해하는 데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9-04-11 19:1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