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놈 믿지말고, 소련놈에 속지말라. 일본놈들 일어난다." 1945년 해방 후 민간에서 회자되던 경구다. 열강에 둘러싸여 제 정신을 못차리고 충격의 역사를 거듭 겪어왔던 한국의 실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놈놈놈 들 중에 중국놈은 어디갔을까? 동아시아의 맹주로서 수 천년 한반도와 각축을 벌여왔던 중국의 영향력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오늘날 미국과 무역전쟁으로 각을 세울 정도로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는, 오랜 세월 동안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라는 냉전 이데올로기 때문에 오도되어 줄곧 풀기 어려운 문제였다. 북미 협상 전후하여 세 번씩이나 시진핑을 만난 김정은은 혈맹으로서 중국의 경제력과 정치력에 기댄 초등학생 같은 입장이다. 하기는 미국의 치마폭에 싸여 군사와 안보를 보호받는 남한의 처지에서 왈가왈부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도대체 우리 남과 북 7000만 겨례는 어떤 정신으로 이 어려운 국면을 헤쳐나가야 할 것인가? 지난 10월 사단법인 선 (이사장 강금실 변호사)의 후원 하에 열린 파주 생태학 컨퍼런스에서 '백년의 급진'의 저자 원테쥔을 만났다. 2002년부터 중국 정부의 정책이 친자본주의적인 노선에서 벗어나 전면적인 샤오캉(小康) 조화 사회 건설로 바뀐데 이론적 영향력을 발휘한 학자다. 그는 한결같이 우파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서구식 근대화는 지속 불가능한 주술같은 것이라고 매몰차게 진단한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이념 대 이념의 극한대립을 피하고, 한때 동아시아와 유라시아를 휩쓸며 2000여년 간의 고조선 문명을 지속하게했던 한얼정신을 펼치기 위해 급선무가 있다. 무엇보다도 일본과 미국의 지적 종속화를 거치며 맥이 희미해진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한얼정신을 살려야 한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 책임있는 공공철학으로서 홍익 정신만큼 내세울만한 철학이 있을까?
홍익철학을 통하여 전 지구적으로 위기에 봉착한 근대 세계체제 이후의 대안 찾기에 힘을 쏟아야 한다. 퇴행을 거듭하는 한-미-일의 냉전적 동맹체제 시각을 벗어나야 한다. 남한은 미국의 치마폭에서, 북조선은 중국의 뒷배에서 안주하기에 벗어나야 한다. 유라시아 역사학자 이병한의 말대로 "중국에서의 변화도 그렇고 인도에서의 변화도 그렇고 이슬람도 그렇고, 러시아도 그렇고, 그들의 전통을 업그레이드하고 그들의 전통을 업데이트하면서 21세기 국가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게 메가트렌드다"며 "자생적인, 토착적인 근대화에 주목을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자주적인 우리 한국인 고유의 한얼정신으로 동아시아와 유라시아 전체를 무대로 활약할 수 있는 안목을 갖는 것이 하루 빨리 한국의 젊은이들을 '헬조선'에서 탈출하고 '지속 가능한 지구 인류 문명 만들기'에 기여할 수 있게 만드는 길이다.
2019-02-15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