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5일 당시 경찰의 신분이던 정호석 님은 경찰관 옷을 벗고 자신의 피로 그린 태극기를 들고 딸이 다니고 있는 학교에 들어가서 힘껏 외쳤습니다. "대한 독립 만세!" 그 외침을 들은 딸과 어린 학생들이 뒤를 이어 만세를 외쳤습니다. 이때 체포된 정호석 님은 일본 검사 앞에서 당당히 말했습니다. "삶에 쪼들리고 있는 2천만 동포를 구하기 위해 각오하고 한 일이니 목숨이 아깝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당시 배재고등보통학교 2학년이던 김동혁 님은 독립선언서를 계속 배포하며 만세 시위에 참여하다가 체포되어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재판정에 있던 그는 일본 판사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조선 사람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그것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고 그저 당연한 일일 뿐이다."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보성사의 사무원 인종익 님은 독립선언서를 지방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체포되었습니다. 노끈 장수 김호준 님과 그의 친구 양재순 님은 '각성호 회보' 라는 신문을 만들어 배포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갖은 고초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오직 하나 '대한 독립 만세' 를 외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 어느 곳에도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목숨까지 바치는 것을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생각하는 가운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삼일운동을 꽃피웠던 유관순 열사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몸 바친 그분들의 희생을 조금이라도 기억하고 이들이 이룬 위대한 애국 애족정신을 승화시켜 나가야겠습니다.
2019-03-07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