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추운 겨울 밤에 장군의 딸인 넬리는 마을의원을 찾아 문을 두드립니다. 그런데 마을의원 의사 루키치 박사의 대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이미 밤이 늦었고 문이 열리지 않지만 넬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한참 후 요리사가 고개를 내밀고 루키치 박사는 전염병 환자들을 며칠간 돌보다 돌아와 쓰러져 주무시고 있어서 깨울 수 없답니다. 특히 박사님이 침실에 가면서 '좀 쉬어야 하니 깨우지 말라'고 특별히 부탁하셨다며 깨우기를 완강히 거부합니다.
넬리는 요리사를 밀치고 집안으로 들어가 의사의 침실 앞에 도착한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티푸스로 위독하다'니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녀의 소란에 깨어난 의사는 하소연을 합니다. 지난 사흘 동안이나 티푸스 환자들을 진료하다 파김치가 되어서 이제 막 돌아 와서 쉬고 있고, 사실은 자신도 전염병에 감염되어 현재는 열이 펄펄나는 환자라며 제발 좀 봐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넬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애걸복걸합니다. 의사는 체온계를 보여주며 '내가 40도나 되는 환자인데 어떻게 다른 환자 왕진을 가겠냐?'며 애원 합니다. 그래도 넬리는 막무가내입니다. 의사는 자신은 갈수 없으니 읍내 보건소에 공중보건의에게 가보라고 부탁합니다.
넬리는 안된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도 40킬로인데 여기서 또 20킬로를 더 가면 너무 늦고 마차를 끄는 말들도 지쳐서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발 가 달라고, 사람을 살려 달라고 하소연을 하던 넬리는 하소연이 통하지 않음을 깨닫고 돌변합니다. 그녀는 '직무태만으로 의사를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기가 막힌 의사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일어난 의사에게 그녀는 옷을 입히고, 구두를 신기고 자신의 마차에 태워서 그녀의 집으로 갑니다.
심야에 도착한 넬리는 의사 선생에게 잠시 식탁에서 기다리라 부탁하고 안방으로 들어갑니다. 안방에 들어가 보니 남편이 심각합니다. 마음 급한 그녀는 남편을 살려달라며 의사에게 되돌아 왔는데 의사가 쓰러져 있습니다. 심한 티푸스로 쓰러졌습니다. 추운 겨울에 마차를 타고 먼 길을 달려온 환자 의사는 잠시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날 밤 의사도 죽고 넬리의 남편도 죽습니다. 이상은 안톤 체호프의 단편 소설 '거울'의 줄거리입니다.
의사 소설가 안톤 체호프는 의사와 전염병에 관한 단편 작품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체호프는 의사로 역병 전문가였는데, 전염병을 다룬 소설을 많이 썼습니다. 스스로 '의술은 자신의 공식 아내요 문학은 자신의 애인이다'라고 했던 체호프는 자신의 작품들에서 의사들의 가난과 불행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단편소설 '거울'은 전염병이 창궐할 때 나타나는 인간성 상실을 넬리를 통해 보여줍니다. 남편 치료를 위해 다른 사람의 고통은 외면했던 잔인한 넬리가 무섭습니다. 코로나 시국에서 체호프가 그려낸 '넬리'들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코로나 사태에서 전염병으로 힘든 국민들을 귀찮게 여기거나, 국민들의 신음소리에 시비를 거는 몰염치한 지도자들도 '넬리'를 닮은 것 같아 분노를 감추기 어렵습니다. 또 거짓과 몰염치로 방역을 더 어렵게 하는 종교집단의 몰지각에서도 넬리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어렵고 힘들수록 양보와 관용으로 이 사태를 이겨야 합니다. 목숨 걸고 대구 경북으로 모여드는 의료진의 헌신에 박수를 보내며 넬리의 그림자들은 다 지워 버리는 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행복 디자이너 강태광 목사 (World Share USA 대표)
2020-03-02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