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어느 주종을 말하면 그에 걸맞는 대표적인 나라를 떠올리곤 했다. 예를 들어 ‘맥주는 독일, 와인은 프랑스, 위스키 하면 영국’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종주국이라는 의미가 희미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오랜 전통과 경험을 통해 쌓은 노하우와 좋은 기후에서 생산한 원료가 갖춰져야만 좋은 술이 생산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좀 다르다. 많은 연구와 기술이 공유되고 있어서다.
와인만 해도 그렇다. 역사적으로 와인의 대명사는 그 어디보다도 프랑스였던 만큼 최고의 와인은 모두 프랑스의 독무대였다고 할 수 있었다. 헌데 이러한 명성을 무참히 무너뜨린 사건이 있었으니 프랑스 와인과 미국 와인의 세기적 대결이었다.
1976년 파리에서 와인숍을 운영하던 영국인 스티븐 스퍼리어는 캘리포니아 와인을 접하고는 그 맛에 매료됐다. 그는 캘리포니아 와인이 프랑스 와인의 어느 수준에 미치는지 궁금한 나머지 11명의 와인 전문인들로 구성된 평가단을 만들어 캘리포니아 와인과 프랑스 와인의 블라인드 테이스팅 대결을 벌였다.
그 결과 놀랍게도 레드와 화이트 모두 캘리포니아 와인들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른바 그 유명한 ‘파리의 심판’이다. 굴욕을 참을 수 없었던 프랑스의 요구로 3번의 재대결이 벌어졌지만 모두 미국의 승리였다.
이제 세계의 와인은 크게 구세계 와인과 신세계 와인으로 분류한다. 구세계 와인은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나라에서 천년이 넘는 오랜 기간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훌륭한 와인을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신세계 와인은 미국, 칠레, 호주, 일본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 위스키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일본 위스키는1923년 토리이 신지로가 스코틀랜드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다케쓰루 마사타카와 손을 잡고 주조에 들어간 후 릫산토리릮라 불리게 된 주류기업에서 시작되었다.
거의 100년이 되는 긴 세월의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일본 위스키는 그동안 세계시장에서 거의 무명의 신세였다. 그러다가 2015년 세계 위스키 품평회에서 본고장 스카치 위스키를 누르고 영국 ‘위스키 바이블’ 1위에 올랐다. 스코틀랜드 싱글 몰트 위스키 리스트에 스코틀랜드가 아닌 지역 위스키로는 일본 위스키 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자 일본 위스키 값이 치솟기 시작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세계 호사가들이 좋아하는 위스키는 산토리의 ‘야마자키 25년’생으로 5800 여 달러나 한다고 한다.
헌데 느닷없이 이 ‘야마자키 25년’ 위스키가 화제가 되고 있다.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 때문이다. 지난 2019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일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했을 때 일본 아베 정부가 폼페이오 전 장관에게 선물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 고급 위스키가 감쪽같이 사라져 조사를 받는다고 한다.
미 관료는 받은 선물이 390달러를 넘으면 정부에 그만큼의 자기 돈을 내고 소유하든가 아니면 국고로 넘겨야 한다. 이번에 사라진 위스키가 야마자키로 추정되는 이유는 그 이름이 G20가 열렸던 오사카 지역의 마을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고 당시 시장가격이 이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당사자는 모르는 일이라고 하는데 관심은 누구의 입으로 들어갔을까 하는 데 주목되고 있다.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는 이렇게 읊었다.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오네’ 위스키는 입으로 들어갔는데 누구를 바라보고 한숨지었을까?
2021-08-17 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