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황석영·김혜순 등 거론…최근 10년 세계문학상 잇단 수상·후보

"해외 출판되는 작품 200종 넘어…번역가 체계적 육성해야"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소설가 이문열은 지난 2014년 10월 한 북콘서트에서 이러한 독자의 질문을 받았다.

그는 번역과 세계화 문제를 꼽으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노벨문학상에 한국 문학이 굉장히 근접해 있다"고 단언했다.

딱 10년이 흘러 변방의 언어를 쓰는 한국 작가들에겐 요원한 염원이던 노벨문학상 수상이 현실이 됐다.

한강이 지난 10일 아시아 여성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는 굵직한 역사를 쓰면서다.

이번 수상으로 세계 시장에서 저력을 입증한 한국 문학의 위상이 한단계 도약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강이 영국의 맨부커상(2016)과 프랑스 메디치상(2023)·에밀 기메 아시아 문학상(2024)을 잇달아 받으며 세계문학계에서 각인됐듯이, 최근 10년간 세계 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작가들이 속속 등장하고 수준 높은 번역가들도 생겨났기 때문이다.

우리 문학계에서 2000년대 이후 노벨문학상 잠재적 후보로는 고은 시인과 황석영 작가 등이 거론됐고 최근에는 김혜순 시인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고은은 2002년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외신에 언급된 이후 단골 후보로 거론되며 기대와 실망을 함께 받아야 했다. 온라인 도박업체 등에서 해마다 유력한 후보군으로 꼽혔고 올해도 나이서오즈는 총 26명의 작가 배당 순위 공개에서 고은을 앤 카슨(10배)과 동률로 랭크했다. 그러나 성추문에 휩싸인 그는 지난해 새 시집을 출간했으나 반대 여론에 부딪히기도 했다.

황석영 작가도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가 2005년 수상이 유력하다고 언급한 후보 중 하나다.

그는 올해 4월 소설 '철도원 삼대'로 영국 부커상 국제부문 최종후보에 올라 연 간담회에서 수상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며 "그다음에 '할매'라는 소설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아쉽게도 부커상 수상에 이르진 못했지만 그는 1998년 이후 20여년간 10여 차례 국제문학상 후보에 오른 한국 대표 작가로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김혜순 시인은 2019년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에 이어 올해 3월 시집 '날개 환상통'으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았다. 이 시집은 한국계 미국인 시인 최돈미의 번역으로 지난해 5월 미국 출판사 뉴디렉션 퍼블리싱에서 출간된 이후 현지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부커상에서는 3년 연속 한국 작품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 올해 황석영 작가에 앞서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2022)와 천명관 작가의 '고래'(2023)가 세계 문학계에 눈도장을 찍었다.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2022년 부커상 1차 후보에 오른 데 이어 지난달 메디치상 1차 후보에도 포함됐다.

시인인 곽효환 전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연간 해외에서 번역 출판되는 한국 문학 작품이 200종을 넘어섰고, 수십만 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나오고, 선인세 2만 달러의 작가군이 10명이 넘는다"며 "또한 문학상 수상으로 작가의 지난 작품이 해외에서 출판되고 전문지 비평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는 "한강 작가를 통해 한국 문학의 고유성이 세계문학의 중심에서 보편적 질문으로 만들어지는 사례를 봤다"고 짚었다.

이같이 한국문학이 주변부에서 세계문학 중심으로 파고든 배경에는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번역가들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한강의 소설은 28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서 총 76종의 책으로 출간됐다.

곽효환 전 원장은 "2010년대 3세대 원어민 번역가가 등장하며 한국 문학이 세계시장에서 예술적, 상업적으로 통한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노벨문학상은 한국 문학의 목표가 아닌 관문인 만큼 김지영, 데버라 스미스, 안톤 허, 김소라 등과 같은 번역가가 꾸준히 나오도록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mim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