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원·시장 등 그리스·로마 유산 파괴…국제사회 개입 호소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간의 전쟁으로 레바논의 고대 문화유산들도 수난을 겪고 있다.

동지중해에 위치한 레바논은 인구 500만명의 작은 나라이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유산 5개를 보유한 유서 깊은 곳이다.

고대 문명의 교차점에 자리해 페니키아, 이집트, 그리스, 페르시아, 로마의 도시와 사원, 기념물 등을 품고 있다. 중세 기독교 십자군이 해안을 따라 지은 요새들도 있고, 일부 유적지는 수십만 년 전 구석기 시대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NBC 방송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내용과 현지 주민 인터뷰 등을 토대로 레바논의 역사적인 마을 마히비브와 나바티예가 완전히 파괴됐다고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마히비브와 나바티예에는 각각 고대 사원과 몇백년 된 시장이 있었다.

레바논 북동부 발벡도 위험에 처해있다. 고대 로마 사원과 원형극장 등의 유적지가 보존된 역사적인 도시인 이곳은 헤즈볼라의 활동 지역이라는 이유로 이스라엘군의 표적이 돼 왔다.

고대 그리스 유적 도시인 레바논 남부 티레 역시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았다.

고고학자 나데르 시클라우이는 수도 베이루트의 국립박물관에서 NBC와 만나 "나는 울고 있다"며 "이스라엘과 같은 적이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NBC는 인터뷰 중에도 이스라엘 공습으로 인한 폭발음이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서도 들렸다고 전했다.

레바논의 또 다른 고고학자 타니아 자벤은 이스라엘의 공습에 따른 진동으로 고대 구조물이 깨지거나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아직 발굴되지 않은 땅속 유물도 파괴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3∼2019년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에서 고대 건축물과 조각상을 파괴하고, 탈레반이 2001년 아프가니스탄 불상을 파괴한 사례를 언급하며 유적지가 전쟁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인한 문화유적 피해가 늘면서 레바논은 국제사회의 개입을 호소하고 있다.

레바논 의회의 나자트 살리바 의원은 이달 초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유적지들이 대표하는 전통, 이야기, 가치들과 과거와 미래를 잇는 유산들을 지켜내야 한다"면서 ""이 호소는 물리적인 보존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noma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