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경제·정치·외교적 악영향 내다보며 비판 사설

"자유무역 끝나고 근린 궁핍화 횡행한 1930년대 회귀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발표한 상호관세를 두고 미국 언론에서도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상도 해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트럼프의 새로운 보호주의 시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세계 무역 시스템을 폭파하는 것은 대통령이 선전한 것과 같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상호관세의 문제점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WSJ은 상호관세가 초래할 문제를 크게 ▲ 경제적 리스크와 불확실성 ▲ 미국 수출의 약화 ▲ 정경유착의 심화 ▲ 미국의 경제 리더십의 종말 ▲ 중국의 기회 획득 등 5가지로 나눠 조목조목 설명했다.

먼저 관세 부과 대상 국가들이 광범위한 보복 관세로 대응 기조를 정할 경우 국제 무역의 위축과 세계 경제의 침체, 혹은 그보다 더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번 결정은 '관세 장벽' 뒤에 숨어 경쟁을 회피하는 기업이나 노동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으로, 그 결과 독점의 이익은 커지는 반면 경쟁력과 혁신 동력은 약화할 것이라고 봤다.

보복 관세와 미국을 제외한 무역협정 등으로 대응이 이어지면 직간접적으로 미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도 약화할 것이라고 WSJ은 진단했다.

또 관세의 영향을 덜 받으려는 국가나 기업들이 워싱턴DC의 로비스트 생태계로 돈 가방을 들고 찾아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경유착의 가능성도 커졌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해방의 날'을 겨냥해 "해방의 날이 아니라 '적폐들이 새 요트를 사는 날'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상호관세로 인해 국제질서에도 큰 변화가 초래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WSJ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의 주도국 역할을 영국으로부터 물려받은 미국이 수십년간 자유무역의 확대를 통해 번영을 누려 왔다는 점을 상기시킨 뒤 "이제 그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고 규정했다.

이어 "이는 모든 국가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경제적 효율성보다는 정치적 이득을 위해 세계시장을 나눠 먹으려 드는 결과로 귀결될 것"이라며 "최악의 경우 1930년대의 근린 궁핍화 정책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근린 궁핍화란 타국의 경제를 희생시키며 자국 이익만 추구하는 경제 정책을 일컫는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시장의 구매력과 강한 군사력으로 타국을 무릎 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동맹과 무역 상대방으로서의 신뢰를 포함한 '소프트파워'의 상실은 더 큰 손실로 돌아올 수 있다고 WSJ은 강조했다.

특히 미국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동맹들을 향한 중국의 구애가 이어진다면, 이들이 더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중국으로의 기술 수출 통제나 중국 기업 규제에 동참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WSJ은 "한국과 일본이 중국의 첫 타깃이 될 것이고 유럽 역시 리스트에 있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정당화하는 논리 중 하나로 '중국을 향한 외교적 수단'을 들었다는 점은 거대한 아이러니"라고 비꼬았다.

이 밖에 WSJ은 모든 나라에 기본 10%의 관세율을 매긴 뒤 환율 정책과 비관세 장벽 등을 임의로 측정해 추가 관세율을 정한 트럼프 대통령의 산정 방식이 전혀 '상호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