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 강간했어야" , "범죄자 시체를 빨랫줄에"…
 

[해외토픽]

 로드리고 두테르테, 개표 70% 진행된 상황서 39% 득표 1위
 막가파식 언행 불구 '취임 6개월 이내 범죄 근절'공약 적중
"법보다 주먹, 더티 해리"…기존 정치 피로감 국민들에 어필


 9일 치러진 필리핀 대선에서 잇단 막말로 '필리핀의 트럼프'라는 말을 듣고 있는 민주필리핀당(야당) 소속 로드리고 두테르테(Duterte·71) 다바오시(市) 시장이 경쟁 후보들을 큰 표차로 앞서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다. 1946년 독립 이후 70년간 이어진 필리핀 대선 사상 최대 이변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필리핀 선거 감시 단체 PPCRV와 필리핀방송인협회(KBP)의 비공식 집계에 따르면 두테르테 후보는 개표가 70% 정도 진행된 가운데 38.9%의 득표율(1205만표)로 2위인 집권당의 마누엘 로하스 전 내무장관(22.1%·686만표)에 크게 앞서며 승리를 굳히고 있다. 

 두테르테 후보는 이번 선거전에서 5월 중순까지만 해도 여론조사에서 2~3위를 오르내렸지만 이후 지지율을 30%대 중반 안팎까지 끌어올리며 선두로 나선 뒤 줄곧 승기를 굳혔다.

 지방검사 출신인 그는 '6개월 내 범죄 근절'이라는 단순 명료한 공약으로 이번 필리핀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막가파식의 거친 언행에다 범죄 연루 의혹까지 불거져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선거 기간에 "(성폭행 살해 여성을 지칭하며) 내가 먼저 (강간)했어야 하는데" "장애인들은 자살하는 걸 고려해보라" "비아그라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다" 등의 막말을 했다.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에 대해서는 "중국이 점령한 남중국해 섬으로 제트스키를 타고 가겠다"는 황당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다바오 시장 재직 22년 동안 정식 재판 없이 1000여명의 범죄 혐의자를 처형한 것을 치적처럼 내세우며 "대통령이 되어도 시장 때와 똑같이 할 것"이라고도 했다. 외신들은 막말과 좌충우돌 행보를 계속하면서도 높은 지지율을 보인 그를 '필리핀의 트럼프'라로 불렀다.

 하지만 필리핀 국민은 정치인의 '품격'과는 거리가 먼 그를 선택했다. 범죄 도시로 악명 높았던 다바오시를 맡아 강력한 치안 정책으로 이 도시의 범죄율을 크게 떨어뜨린 실적이 범죄에 시달리고 있는 필리핀 국민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는 유세장에서 "범죄자의 시체를 빨랫줄에 널어버리겠다" "마닐라만(灣)을 범죄자의 피로 물들이겠다"고 했다. 지지자들은 그를 '더티 해리(상관의 방해에도 범인을 끝까지 추적해 사살하는 형사를 다룬 할리우드 영화)'라 불렀다. 리처드 헤이다리안 마닐라 살레대 정치학과 교수는 CNN 인터뷰에서 "소수 정치 명문가 후손들이 주도해온 필리핀 정치에 피로감을 느낀 국민에게 두테르테가 '힘센 지도자'로 어필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두테르테는 
 1945년 남부 마신에서 법률가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산베다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지방검사로 활동했다. 1988년 인구 150만명의 필리핀 남부 도시 다바오 시장을 맡은 이후 총 22년간 재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