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초점]


 필리핀 두테르테 등 곳곳서 막말 정치인 득세 , 양극화·실업 등 현실에 대한 불만에 가득찬 民心 자극 

 이념·정책 사라지고 좌파·우파 정치구도까지 파괴 
"트럼프 당선시 전세계서 '제2의 트럼프' 속출" 우려
 분노에 기름붓는 막말정치에 '이성적 구분'길잃어 

 "범죄자들의 시체를 빨랫줄에 널어버리겠다." "교황이 와서 도로 막힌다고? 개XX 집으로 돌아가라고 해." 폭력 영화 대사로 등장할 만한 이 말을 한 이는 지난 9일 필리핀 대선에서 압승을 거둔 민주필리핀당(야당) 소속 로드리고 두테르테(71) 다바오시(市) 시장이다. 그는 선거 기간 내내 이런 막말로 지지도를 끌어올려 1946년 독립 이후 70년간 대농장을 소유한 유력 가문들이 끌어온 필리핀 정치판을 단숨에 뒤집어버렸다. 서방 언론은 이런 그를 '필리핀의 트럼프'라고 불렀다.

 두테르테가 소속된 민주필리핀당은 상원 의원 한 석을 보유하고 있는 중도 좌파 성향의 초미니 정당이다. 그 자신도 필리핀 남부에 있는 인구 150만명 규모의 중소도시 시장에 불과하던 그가 작년 연말부터 지지도가 빠른 속도로 상승더니 결국 여세를 몰아 대선에서도 승리했다. '6개월 내 범죄를 근절하겠다'는 단순명료한 공약, 막말을 통해 만든 '반(反)기성 정치인'의 이미지로 민심을 사로잡았다. 필리핀 언론들은 "두테르테는 족벌 정치와 양극화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이용해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그녀들, 씻지도 않고 몸 판다"
 이념과 정책을 넘어선 막말과 분노의 정치가 세계 정치판을 흔들고 있다. 멀리 볼 것도 없다. 미국에선 부동산 재벌로 막말을 계속해온 도널드 트럼프가 162년 역사를 가진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됐다. 브라질에서는 아이티 난민을 향해 "쓰레기가 브라질에 들어오려고 한다"고 한 자이르 볼소나루(61) 의원이 2018년 대선 유력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아이티 이민자들에 대해서 "그 나라 여자들은 씻지도 않고 몸을 판다. 우리나라에 병균을 가지고 올 사람들"이라고까지 했다. 트럼프에 못지않은 막말을 쏟아내고 있는 셈이다. 오스트리아에서도 극우 정당 후보가 2차 대전 후 처음으로 대선 1차 투표 1위에 올랐다. 그는 "오스트리아에 무슬림(이슬람 신자)을 위한 자리는 없다"면서 '오스트리아 우선주의'를 선거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트럼프의 '무슬림 미국 입국 금지'발언과 다를 바 없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전문가들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양극화, 장기 경기 침체에 따른 실업과 중산층 붕괴 등을 막말 정치의 배경으로 보고 있다. 

▶美 넘어 유럽까지 물들어
 정치권 밖이나 외곽에 있던 인사들이 여기에 불만을 느끼고 유권자를 막말로 자극해 기성 정치의 틀을 무너뜨리는 데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세계화를 외치는 포퓰리스트들이 막말로 기성 정치와 양극화 등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자극한 것이 인기몰이의 비결이다. 만약에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선에 성공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세련된 트럼프'가 속출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파이낸셜타임스의 국제정치 담당 주필 기드온 라크만은 "트럼프는 워싱턴(정치)과 월스트리트(경제)뿐 아니라 주류 언론, 대학 등 모든 엘리트에 대한 가차없는 공격으로 성공했다"며 "분노의 정치는 미국을 넘어 유럽까지 건너오고 있다"고 했다. 막말과 분노의 정치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판을 치고 있다. 한 전문가는 "분노를 가장 잘 건드릴 수 있는 것이 바로 막말"이라며 "정책적으로 좌우라는 이성적 구분 대신 '우리 편이냐 남이냐''기득권이냐 아니냐'는 감성적 구분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