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딸 뜻 따라 사재 털어 6년전 장학회 설립

(전주=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 "장학사업은 사랑하는 딸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제 마지막 선물입니다. 진영이도 생전 선행을 많이 했던 아이였던 만큼 하늘나라에서 기쁜 마음으로 지켜볼 겁니다."

자식이 먼저 가면 부모는 가슴에 묻는다.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버지의 가슴 속 상처는 아물 줄 모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7년 전 홀연히 세상을 등졌다.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비보에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슬픔의 나날을 보냈지만 딸을 위해 다시 일어섰다.

2009년 세상을 떠난 배우 장진영씨의 아버지인 장길남(81) 계암장학회 이사장의 이야기다.

처음 딸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장 이사장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었다. 예쁜 외모에 의지가 강하고 똑 부러지는 성격의 딸은 아버지의 자랑이었다.

딸은 위암 투병 중에도 모교인 전주 중앙여고에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꾸준히 선행을 해왔다.

장 이사장은 평소 나눔을 실천했던 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장학사업에 매진했다.

전주시 덕진구 만성동에서 폐수처리용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장 이사장은 2010년 3월 딸의 뜻을 기리려고 사재 11억여원을 털어 계암장학회를 설립해 소외된 환경에 있는 인재들을 돕고 있다.

그는 2012년 전북대에 1억원을 쾌척한 데 이어 작년에도 5천만원을 기부했다. 매년 수십 명의 전북지역 중·고교생이 장학금 혜택을 받고 있다.

"푸르러 높아가는 가을 하늘 아래 한 송이 국화 영원한 잠에 들다. 고고한 자태를 이제는 직접 볼 수 없지만 그를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속에 은은한 향기로 남아 숨 쉬어라."(장진영 기념관의 기념비문)

장 이사장은 2011년 5월에는 전북 임실군 운암면에 기념관을 열기도 했다. 병으로 고생했던 딸이 편히 쉬도록 공기 좋은 산골에 조성했다.

그는 "평생 살아오면서 많은 희로애락을 겪었지만 자식을 앞서 보낸 부모의 마음이 이토록 참담하고 슬픈 것인가를 알게 됐다"며 "사랑하는 딸을 앞세운 비통함을 가눌 길이 없지만 생전에 딸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며 딸의 영혼을 영원히 살아 숨쉬길 바라는 마음에서 장학사업을 하고 있다. 학생들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인재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딸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딸이 참으로 심성이 고왔다"라며 "보수적인 성격 탓에 처음에 딸의 연예계 활동을 반대했던 게 가장 후회된다. 딸에 대한 기억을 잃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 중"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장 이사장은 앞으로 기회가 닿는 대로 장학재단 활동을 할 예정이다.

3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과 등진 장진영씨. 장씨의 숭고한 뜻은 아버지를 통해 승화하고 있다.

1972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장진영씨는 1992년 미스코리아 충남 진으로 뽑힌 후 연예계에 데뷔했고 영화 '반칙왕'과 '오버 더 레인보우', '국화꽃 향기', '싱글즈', '청연' 등에 출연해 톱스타로 활동하던 중 2009년 9월 1일 위암으로 세상과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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