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부녀자 납치 미수 사건과 유사…차 안 머리카락서 남성 DNA

(춘천=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강원 경찰이 '브레인스토밍' 기법을 처음 도입해 원점에서 다시 실마리를 풀어보려는 이른바 동해 학습지 여교사 피살사건은 13년 전인 2006년 3월 14일 동해 심곡동 약천마을에서 발생했다.

이 마을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시조 작가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1629∼1711)이 유배 생활을 했던 곳이다.

'동창이 밝았느냐'로 시작되는 시조의 배경이자, 물이 좋기로 유명한 이 마을의 우물에서 알몸 상태의 여성 시신이 발견되자 조용한 시골 마을은 충격에 휩싸였다.

◇ 13년 전 '우물 속 여인'의 억울한 죽음

우물 속 여인의 시신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마을 주민 J(당시 45세)씨였다.

그는 '콸콸' 흐르던 물줄기가 평소와 달리 '졸졸' 흐르자 이물질이 우물 입구를 막은 것으로 생각하고 이를 제거하려 우물의 뚜껑을 열었다.

그 순간 J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알몸 시신이 엎드려 웅크린 자세로 우물 위에 떠 있었다. 시신의 까만 머리카락 한 움큼이 우물의 입구를 막아 물줄기가 약해진 것이다.

숨진 여인은 동해시에 사는 학습지 교사 김모(당시 24세)로 확인됐다.

김씨는 시신으로 발견되기 일주일 전인 2006년 3월 8일 오후 9시 40분께 실종 신고됐다.

당시 김씨는 동해시 부곡동의 한 연립 주택에서 학습지 가정방문 교육을 마치고 귀가하다가 연락이 끊겼다.

김씨가 발견된 우물의 깊이는 60∼70㎝로 비교적 얕은 데다 뚜껑으로 덮여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김씨 주검은 '억울한 죽음'을 말하고 있었다.

부검결과 사인은 경부 압박 질식사였다.

경찰은 김씨가 실종 직후 누군가에 의해 목이 졸려 살해된 뒤 우물 속에 유기된 것으로 판단했다.

김씨가 타고 다니던 마티즈 승용차는 이튿날 오후 동해체육관 앞 주차장에서 발견됐다. 차 안에서 김씨 옷과 일부 소지품도 발견됐다.

이후 김씨의 주변 인물이 수사 선상에 올랐지만, 범인의 윤곽조차 찾지 못했다.

◇ 유일한 증거는 머리카락서 확보한 '남성 DNA'

그로부터 석 달여 뒤인 6월 1일과 같은 달 23일 동해시 부곡동 인근에서 부녀자 납치 미수가 잇따랐다.

이 두 사건은 '우물 속 여인' 김씨 사건과 여러 측면에서 매우 닮았다.

세 사건의 발생 장소가 반경 150m 안에 위치한 곳이라는 점, 늦은 저녁 주택가 인근에서 발생한 점, 혼자서 승용차를 타려는 체구가 작은 여성을 공격해 승용차와 함께 납치를 시도한 점 등은 동일범의 소행 가능성을 강하게 내비쳤다.

또 다른 공통점은 범죄 흔적이 남기 쉬운 흉기 등 범행 도구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찰은 범인이 좀처럼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용의주도한 인물일 것으로 판단했다.

그렇다고 증거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두 번째 사건의 피해자와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을 당시 피해자의 차량 룸미러에서 한 올의 머리카락을 확보했다.

국과수 분석결과 DNA 유전자의 주인은 남성이었다.

경찰은 피해자들과 가족은 물론 주변 지인 등을 대상으로 샅샅이 DNA 대조 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확보된 DNA와 일치하는 인물은 끝내 찾지 못했다.

이후 범인은 완전히 종적을 감췄다. 우물 속 여인의 피살사건도 13년째 장기 미제로 남았다.

강원경찰이 도내 장기 미제 강력사건을 대상으로 처음으로 시도하는 '브레인스토밍' 기법의 자유 토론을 통해 '우물 속 여인'의 억울한 죽음을 풀 새로운 단서를 찾을지 주목된다.

j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