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 96%가 암흑"…국가 기능 '마비'

[베네수엘라]

지하철 중단,통신망 먹통…병원 환자 사망 사고 잇따라
마두로 정권 "미국 탓", 과이도 의장 "마두로 몰아내야"

극심한 경제난과 내정 불안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 '남미 역사상 최악의 정전사태'가 발생해 국가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미 제국주의의 탓"이라 돌렸지만, 미국은 이를 부인했다.

지난 7일 저녁 시작된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사태로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가 암흑에 휩싸였다. 전기가 끊긴 도시는 어둠으로 뒤덮였고, 항공기와 지하철 운행이 중단돼 사람들의 발이 묶였다. 현금인출기와 통신망까지 먹통이 돼 돈을 찾거나 물품을 결제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인공호흡기 등 병원 장비마저 멈춰 환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잇따랐다. 전국 23개 주 중에 22개 주로 정전 피해가 확산한 가운데 기업들이 문을 닫았고, 학교도 수업을 취소했다. 정전에 이어 연료 공급에도 차질이 생기면서 식료품이 배달되지 못해 식량난이 더 극심해 질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외신들은 "베네수엘라 국토 96%가 암흑에 갇힌 남미 역사상 최악의 정전사태"라고 평가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이번 사태가 미국의 지원을 받는 반정부 세력의 공격 탓이라며 '미국 배후설'을 주장했다. 7일 시작된 정전은 하루 만에 수습됐지만, 9일 남부 볼리바르주의 대형 수력발전소가 공격을 받아 폭발하며 사태가 전국으로 확산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를 '전력전쟁'이라 명명했다.

후안 과이도 의회의장이 이끄는 반정부 세력은 국영 전력회사의 부실과 투자 부족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과이도 의장을 지지하는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트위터에 "베네수엘라엔 음식과 약품도 없고, 이제 전기도 없다"며 "마두로의 정책은 어둠만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책임공방은 9일 열린 반정부-친정부 집회에서도 이어졌다.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는 과이도 의장이 이끄는 수만명의 시위대는 이날 카라카스 거리에서 마두로 대통령 퇴진과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 중 경찰이 반정부 시위대의 연단을 해체하자 과이도 의장은 확성기를 들고 차량 위에 올라가 "마두로 정권 때문에 우린 지금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평화로운 방법으로 정권을 무너뜨리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빨간 옷을 입은 마두로 대통령 지지자들도 대통령궁 인근에서 맞불 시위를 열었다. 마두로 대통령은 지지자들을 향해 "과이도는 대통령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미국의 꼭두각시일 뿐"이라며 맞섰다. 양쪽의 시위대는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고, 기름이 떨어져 자동차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수시간을 걸어 시위에 참여했다. 이날 도심 곳곳에서 시위를 통제하려는 경찰과 시위대 간에 충돌이 발생해 혼란이 가중됐다. 반정부 세력에선 이번 정전 사태로 17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한편 베네수엘라 국영전력회사의 전직 간부는 CNN과 인터뷰에서 "노후된 설비와 빈약한 관리태세가 정전 사태의 원인"이라며 고장 설비를 복구할 수 있는 "부품과 인력도 부족한 형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