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비판과 견해 수용…폭력에 폭력으로 대응 안 해" 유화 제스처
행정장관에 비상대권 부여 '긴급상황조례' 적용 가능성 열어둬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이 젊은 층과 대화에 나섰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7일 보도했다.

SCMP에 따르면 캐리 람 행정장관은 전날 일부 각료들과 함께 20∼30대를 주축으로 한 홍콩 시민 20여 명과 차이완 지역의 '유스 스퀘어'에서 비공개 회동을 했다.

캐리 람 장관은 지난달 초에 송환법 반대 시위대의 주축인 대학생들에게 비공개 회동을 제안했지만, "회동을 공개하고, 시위 참여자들을 무혐의 처분할 경우에만 대화에 응하겠다"는 대학생들의 요구가 나온 후 이 제안은 무산됐다.

한 소식통은 이번 회동이 중국 중앙정부를 대표하는 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중련판)이 주도했다고 전했다.

회동에 참여한 한 소식통에 따르면 일부 참가자들은 캐리 람 장관에게 "시위대가 요구하는 이른바 5대 요구를 한꺼번에 충족할 필요는 없지만, 먼저 '송환법 완전 철폐'와 '독립 조사위원회 구성'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홍콩 시위대의 5대 요구 사항은 ▲송환법 완전 철폐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이다.

하지만 캐리 람 장관은 "송환법을 완전히 철회하기는 어렵다"면서 거부하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뚜렷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독립 조사위원회 구성 제언에 대해서도 "홍콩 경찰이 시위대의 과도한 무력 사용으로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다"고 강조해 사실상 거부의 뜻을 나타냈다.

한 참석자에 따르면 전날 회동에서 캐리 람 장관은 대부분의 시간을 듣고 메모하는 데 보냈으며, "여러분들의 견해와 비판을 모두 수용한다"는 발언도 했다.

별도 기자회견에서 매튜 청 홍콩 정무부총리(정무사장)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갈등이 무엇인지, 젊은이들이 왜 그렇게 급진적인지 알고 싶다"며 "'노란 조끼' 시위 후 1만여 번의 타운홀 미팅을 개최한 프랑스 정부를 참조해 대화에 나서고 싶다"고 말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합법적 수단을 통해 시위 사태에 대처할 것"이라며 "폭력은 정당화되거나 미화될 수 없으며,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경찰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최소한의 물리력만 행사했다"고 말해 경찰의 강경 진압을 비판하는 시위대나 홍콩 언론의 인식과는 큰 차이를 드러냈다.

홍콩 정부가 '비상상황조례'을 검토하고 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는 "정부는 폭력과 혼란을 멈출 수 있는 법적 수단을 제공하는 홍콩의 모든 법규를 검토할 책임이 있다"고 밝혀 애써 부인하지 않았다.

'비상상황조례'는 비상 상황이 발생하거나 공중의 안전이 위협받을 때 행정장관이 검열, 구금, 거래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공중의 이익에 부합하는 규제를 만들 수 있도록 한 법규이다.

캐리 람 장관은 홍콩 정부가 시위대의 요구 조건을 수용하지 않아 정국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는 일부의 지적을 인정하면서도 "(시위대의) 폭력과 정부가 범죄인 인도 법안을 보류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정부가 요구 조건을 수용하는 것은 부적절할 것"이라고 밝혀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최근 자신이 제안한 '대화 플랫폼'이 시위대에게도 열려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대화 플랫폼이 언제 구성될 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캐리 람 장관은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나와 각료들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경청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며 "사회 각계각층과 진심 어린 대화를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ss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