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해발 2700m 알프스 산정의 '피졸 빙하 장례식'…활동가·주민 250명 검은 옷 입고 추모 의식

지구온난화 최근 13년새 빙하 80~90% 녹아
1850년 이후 스위스 빙하 500개나 자취 감춰
학자들 "금세기 알프스 빙하 90% 해빙"경고

지난 22일 낮 스위스 북동부의 알프스 산맥. 해발 2700m의 피졸산 정상 밑자락에 검은색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남자들 상당수는 검은 모자를 썼고, 일부 여성은 검은 스카프 아래로 얼굴을 가리는 검은 베일까지 드리웠다. 장례식 조문객들이었다. 그들이 조문하러 온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빙하였다.

바로 피졸 빙하의 죽음이었다. 사인은 기후변화, 즉 지구온난화다.

AFT통신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국경에 가까운 스위스 피졸 산정에선 이날 어린이를 포함해 250여명의 활동가와 주민들이 모여, 사라진 알프스 빙하를 애도하는 장례 의식을 치렀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의 빙하학자 마티아스 후스는 "우리는 피졸에게 작별을 고하러 이곳에 모였다"는 말로 추도사를 열었다. 피졸 빙하가 있는 멜스 마을의 사제인 에릭 페트리니는 "신의 도움으로, 기후변화라는 엄청난 도전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일부 조문객은 빙하의 흔적만 남긴 채 말라버린 땅에 꽃을 놓았고, 주민들은 스위스 전통 관악기 알펜호른을 불었다.

이날 장례 의식을 주관한 스위스 기후보호협회의 대표는 "피졸은 거의 대부분의 얼음이 사라져서 과학적으로 볼 때 더이상 빙하가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피졸 빙하는 2006년 이후 불과 13년 새 전체 얼음의 80~90%가 녹아 사라지면서, 지금은 2만6000㎡ 정도만 남았을 만큼 쪼그라들었다. 축구장 4개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면적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알프스 빙하의 증발은 짐작보다 훨씬 심각하다. 빙하학자 후스는 "1850년 이후로 스위스에서만 500개가 넘는 빙하가 완전히 사라졌으며, 그중 50개는 이름이 있(을만큼 큰 규모였)다"고 말했다. 피졸 빙하가 스위스에서 자취를 감춘 첫 사례는 아니란 이야기다.

후스는 그러나 "매우 완벽하게 연구가 이뤄진 빙하가 사라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알프스는 유럽 중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산맥으로, 동쪽 오스트리아에서 시작해 이탈리아 북부와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독일을 거쳐 서쪽으로 프랑스에까지 이른다. 만년설에 뒤덮인 고산준령이 빼어난 풍광을 자랑할 뿐 아니라, 곳곳에 자리 잡은 4000여개의 원시 빙하가 수백만 주민들에게 신선한 물을 공급해왔다.

과학계는 지구온난화가 현재 추세로 지속될 경우우 알프스 전체 빙하의 90%가 금세기 안에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인류가 당장 어떤 대응책을 내놓더라도 2100년까지 알프스에서 최소 절반의 빙하가 사라질 것이란 연구 결과도 나왔다. 그린피스를 비롯한 환경보호그룹들은 기후변화가 빙하의 해빙뿐 아니라 인류의 존속 자체를 위협한다고 경고한다.

최근 스위스 기후보호협회는 2050년까지 자국의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로 줄이는 국민투표를 요구하기 위한 10만인 서명을 정부 쪽에 제출했다. 아직 투표일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스위스 정부는 지지 의사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