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거리 여전히 휑해도 자영업자는 가게로, 교사는 학교로
생업 위협받고도 '이참에 봉사하겠다'며 뛰어든 시민들도

(대구=연합뉴스) 한무선 기자 = "제아무리 백신도 없는 코로나19라고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겠죠"

대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가 발생한 지 2주가 지나면서 그동안 침체됐던 대구에서 서서히 희망의 싹이 트고 있다.

상당수 시민은 여전히 불평 없이 자기만의 삶의 터전을 지켜내고 있고 일부는 이참에 봉사하겠다며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첫 확진 환자가 나온 지난달 18일을 기점으로 시민들의 일상은 활력을 잃어버린 모습으로 바뀌었다. 마치 컬러 사진이 한순간에 흑백 사진으로 바뀐 듯 누구나 느끼는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5일 낮 대구 주요 시가지는 여전히 행인들이 얼마 보이지 않아 한산했다. 골목 사이사이에서 영업하던 식당이나 상가 중 일부는 문이 굳게 잠겨 있거나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감염자들이 쏟아져나오면서 하루 수십만명이 오가던 번화가 동성로도 역시나 휑한 모습이다.

영남권 최대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은 유사 이래 처음으로 6일간 영업을 중단한 뒤 다시 문을 열었지만, 손님은 끊기고 도심 지하상가도 연일 불이 꺼진 상태다.

한산한 도로, 텅 빈 시내버스와 지하철,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초저녁부터 아파트 주차장을 가득 채운 승용차들, 텅 빈 놀이공원 주차장이 일상이 됐다.

하지만 분주한 움직임, 왁자지껄함 같은 예전 도시 광경을 머릿속에서 지우면 그저 묵묵히 고단함을 참고 견디며 자기만의 삶을 살아내는 시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수성구 한 아파트 단지 주변 제과점은 예전만큼 가짓수나 물량이 많지 않지만, 매일매일 신선한 빵을 구워내고 있고, 노점 과일상도 자주 보이던 자리에 작은 트럭을 세워둔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인근에서 세탁소를 하는 한 60대는 "손님도 줄고 문밖으로 적막한 거리가 눈에 들어올 때면 이대로 경기가 주저앉아버리는 게 아닐까 덜컥 겁이 난다"면서도 "그래도 일터로 나와 늘 하던 일을 하며 언제고 손님을 맞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개학을 연기해 교문이 굳게 닫혔지만 일선 학교에는 몇몇 교직원이 나와 전화로 학생들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기도 하고 가정학습에 대해 안내하느라 여념 없었다.

모 초등학교 교사 이모(48)씨는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재택근무를 하다 오늘 며칠 만에 학교로 나왔다"며 "교직원 3∼4명이 조를 짜 돌아가며 출근하는데, 교육청 지시사항도 확인하고 23일 개학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순식간에 일터를 잃어버린 이들은 좌절하는 대신 이번에 더 봉사하는 기회를 가져보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기도 해 울림을 주고 있다.

일하던 칠성야시장이 지난달 휴장에 들어가자 이 야시장 젊은 상인 8명은 갹출한 돈으로 재료를 마련해 코로나19 전담 병원 의료진이나 자원봉사자를 위한 도시락을 싸서 3차례에 걸쳐 전달했다.

박수찬(40)씨는 "오늘은 전국 각지에서 지원 나와 두류정수장에 대기하고 있는 구급차 대원들을 위해 유부초밥과 주먹밥, 과일로 도시락 200여개를 준비했다"며 "간식이나 저녁 대용이 될 수 있도록 얼른 싸서 전달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대구역 인근에서 모텔 2곳을 운영하는 배상재 씨는 얼마 전 모텔 1곳 38개 객실을 코로나19 자원봉사자를 위해 무료로 내놨다.

배씨는 "손님도 없고 문을 닫을 수도 없는 이 시점에 그나마 제가 할 수 있는 기부는 숙박을 제공하는 일"이라며 "타지역에서 오신 의사 몇분이 지금 머물고 계신데 소문이 나서 더 많은 분이 와주셨으면 한다"고 마음을 열어 보였다.

인터넷 맘카페 등에서는 그저 집에만 있기가 미안해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는 병원에 물품을 후원했다는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대구에 산다는 한 주부는 "의료진들이 간편하게 먹기에 빵이 좋다고 해서 빵을 적당히 맞춰서 보내드렸다"며 "모두가 힘든 데다 환자나 의료진처럼 특히 더 고생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란 생각으로 함께 극복했으면 한다"고 희망을 내비쳤다.

msh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