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도 섣부른 철거 발표 뒤 법률 근거 못 찾아 오락가락

동상 훼손 사건까지 초래…도민신뢰만 잃은 졸속행정 비난

(청주=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옛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 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동상 철거가 6개월 논란 끝에 결국 존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충북도의 설익은 행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도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에 편승해 충분한 법률검토나 여론수렴 없이 섣부른 철거계획을 내놨다가 번복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행정을 펴 불필요한 갈등만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그러는 사이 전씨 동상이 훼손되는 사건까지 발생해 충북도의 입장이 더욱 난처해졌다.

19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20분께 청주시 문의면 소재 청남대에 있는 전씨 동상의 목 부위를 줄톱으로 자르려 한 A(50)씨가 현행범 체포됐다.

스스로를 경기지역 5·18 관련 단체 회원이라고 밝힌 A씨는 청동으로 된 동상 목 부위 3분의 2가량을 둥그렇게 둘러 가면서 훼손했다.

그는 관광객으로 청남대에 입장한 뒤 미리 준비해 간 줄톱으로 범행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충북도가 두 전직 대통령의 동상을 존치하기로 방향을 정한 뒤 발생했다.

도는 동상 철거를 요구하는 5·18 청남대 동상 철거 국민행동에 최근 "동상이 법에 저촉되지 않아 존치하겠다"는 뜻을 밝힌 뒤 "대신 두 사람이 법의 처벌을 받았다는 내용을 적시한 안내판을 새로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5·18 청남대 동상 철거 국민행동 측은 "충북도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범법자의 동상이 청남대에 세워져 있는 것은 국민정서에 맞지 않으며 철거해야 마땅하다"며 "동상철거를 바라는 국민의 힘을 모아 끝까지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반발 속에 충북도는 동상 철거 논란을 매듭짓기 위해 각계 여론을 수렴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동상 철거 문제는 지난 5월 충북 5·18민중항쟁 40주년 행사위원회의 요구로 처음 공론화됐다.

당시 충북도는 이 요구에 화답해 곧바로 철거 방침을 내놨다. 도정정책자문회의를 통해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지만, 공론화 과정 등은 없었다.

그런데 막상 동상을 철거하려니 법적 근거가 없었다.

난감해진 도는 충북도의회에 도움을 청했고, 이상식 도의원은 지난 6월 금고 이상의 형이 받은 전직 대통령의 동상이나 기록화 등 기념사업을 제한하는 내용의 '충북도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이는 다시 보수단체 반발에 부딪혔고, 조례안 심사를 맡은 의회 행정문화위원회는 7·9·10월 3차례나 결정을 보류해오다가 결국 내분 속에 조례안이 최종 폐기되는 과정을 거쳤다.

충북도의 졸속행정이 국민 갈등과 대립만 키운 꼴이 됐다.

게다가 '철거'를 추진하던 충북도는 6개월만에 슬그머니 '존치'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행정 신뢰도마저 땅에 떨어졌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최진아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시민자치국장은 "도가 철거 발표에 앞서 여론수렴만 제대로 거쳤어도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었는데 스스로 비난을 자초했다"고 꼬집었다.

동상이 있는 청남대는 전두환 집권기인 1983년 건설돼 대통령 전용 별장으로 사용되다가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으로 일반에 개방됐다.

관리권을 넘겨받은 충북도는 청남대 관광 활성화를 위해 초대 이승만부터 이명박에 이르는 전직 대통령 10명의 동상을 세웠다.

jeonc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