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 피하려 시간끌기" 의혹…총장후보추천위 맞물려 잡음도

(서울=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지만, 수사심의위 제도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 수사심의위 제도가 검찰의 기소권 견제라는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여론전이나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한 수사심의위 개최가 확정됐지만 심의 내용·결과에 대한 전망보다는 오히려 심의 시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분위기다.

공정한 수사·기소를 위해 외부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한다는 본래 취지에 비춰 심의 내용·결과에 초점을 맞춰야 함에도 부차적인 변수인 '심의 시기'가 주 관심사로 부각되는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이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후보추천위 회의가 열리기 전 기소를 피하려고 수사심의위 소집을 신청한 게 아니냐는 의혹과 맞닿아 있다. 이 지검장이 수사심의위 제도를 악용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지검장은 전날 총장후보추천위 일정이 공지되기 약 3시간 전 전격적으로 수사심의위 소집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국 최대 규모 검찰청 수장으로 막강한 수사·기소권을 쥔 서울중앙지검장이 표적수사 의혹을 제기하며 본인을 수사하는 수원지검 수사팀의 수사·기소 방침에 불복한 셈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삼성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사건과 채널A 취재원 강요미수 사건 수사에서 수사심의위 권고를 수용하지 않은 전례가 있다. 이런 탓에 이 지검장의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은 '시간끌기'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오인서 수원고검장이 수사심의위의 조속한 개최가 필요하다며 부의심의위 심의 절차를 생략하고 직권으로 대검에 소집 요청을 하면서 맞불을 놓은 것도 이 같은 의도를 간파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어쨌거나 수사심의위 심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이 지검장의 기소는 쉽지 않게 됐다. 심의위 개최 전 검찰의 기소는 이 지검장 수사를 맡은 수원지검을 지휘하는 오 고검장의 수사심의위 소집 요청과도 모순된다.

다만 수사심의위 심의가 끝나면 어떤 권고 의견이 나오든 수사팀은 기소를 강행할 수 있다. 수사심의위의 의견은 수사팀에게 권고적 효력만 있기 때문이다. 수사팀 입장에서는 심의 결과보다 '신속한 개최'가 절실할 수 있다.

수사심의위 소집이 결정됐지만, 이 지검장이 후보로 거론되는 검찰총장 인선과 맞물려 심의 결과보다 '심의 시기' 문제가 부각되면서 제도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수사심의위는 심의 결과가 강제력이 없는 권고에 그치는 데다 최근 수사팀이 권고를 따르지 않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무용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더욱이 수사팀이 정치·사회적 논란에 대한 부담을 덜거나 피의자가 수사·기소 시점을 늦추기 위해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을 남발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검찰수사심의위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사건 등의 수사 과정을 심의하고 결과의 적법성을 평가하기 위해 2018년 도입됐으며 직전까지 총 12차례 소집됐다.

수사심의위는 통상 소집이 결정되고 2∼3주 뒤 열렸다. 하지만 이 지검장의 수사심의위는 검찰총장 후보 추천과도 맞물려 있어 이전보다 더 빨리 소집될 것으로 보인다. 총장후보추천위가 열리기 전 수사심의위가 열릴 가능성도 남아있다.

대검은 "위원회 회의 개최 일시는 위원회에서 관련 절차에 따라 신속히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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