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사진을 보는 순간 잊고 있던 마지막 날 추억이 모두 떠올랐어요."

빛바랜 사진 속에 담긴 고(故) 전재수 군의 앳된 영정사진 앞에서 쉰 살을 바라보는 여동생 영애 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5·18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전 군은 마을 앞동산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다가 계엄군이 쏜 총탄에 맞아 숨졌다.

당시 8살이었던 영애 씨는 그날 오후 오빠와 함께 물놀이했던 추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물총을 쏘던 오빠에게 바가지로 물을 뿌리며 아옹다옹 다퉜는데, 당시 몸이 편찮으신 아버지는 시끄럽다며 야단을 쳤다.

결국 오빠는 집 밖으로 놀러 나갔고, 얼마 뒤 총소리가 들려왔다고 했다.

영애 씨는 "그날 우리가 싸우지 않았으면 오빠가 밖으로 안 나갔을 수도 있다"며 "지금도 저는 그날 그 느낌이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가족들은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숨진 전 군을 가슴에 묻어야 했다.

제대로 된 얼굴 사진이 없었던 탓에 묘비 옆 영정사진이 들어가는 자리엔 무궁화가 대신했다.

그러던 지난 1월, 큰형 재룡 씨가 41년만에 전 군의 사진을 발견했다.

제삿날이 다가온 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보자기로 싸놓은 유품을 풀어 사진첩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큼지막한 사진 뒤에 겹쳐져 있던 또 다른 사진을 꺼낸 순간 그리웠던 전 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 군이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 새 옷을 입고 아버지, 고모들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재룡 씨는 기억했다.

재룡 씨와 유가족은 전 군의 묘비에 이 사진을 채워넣기로 했고, 전 군이 유독 좋아했던 어린이날에 맞춰 추모식을 열었다.

재룡 씨는 "41년 만에 동생의 사진 앞에서 넋을 위로하게 돼 대단히 기쁘다"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시 12살 어린 나이에 계엄군 총탄에 맞아 피 흘린 동생을 생각하니 다시 한번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전 군은 1980년 5월 24일 남구 진월동 마을 앞동산에서 또래 친구들과 놀다 참변을 당했다.

당시 11공수여단은 광주 재진압 작전을 준비하기 위해 인근을 지나 송정리 비행장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이들을 무장 시민군으로 착각한 보병학교 교도대가 집중 사격을 가했다.

총소리에 놀라 친구들과 뿔뿔이 도망치던 전 군은 며칠 전 생일 선물로 받은 고무신이 벗겨져 주우러 돌아섰다가 총에 맞아 숨졌다.

in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