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서식지서는 포식자 눈에 보호색 작동…동물원 근거리 환경과는 달라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대왕판다(Giant Panda)는 누가 봐도 독특한 털 색깔을 갖고 있다. 검은색과 흰색이 극명하게 대비되며 "나 여기 있소" 하듯 두드러진 존재감을 과시한다.

하지만 이런 털 색깔이 주변 환경에 자신을 숨겨 잘 보이지 않게 하는 보호색이라는 뜻밖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브리스틀대학교에 따르면 이 대학 생물학 교수 팀 카로 박사 등이 참여한 국제 연구팀은 첨단 이미지 분석 기술을 이용해 대왕판다의 독특한 털 색깔이 보호색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연구 결과를 과학 저널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 발표했다.

동물은 대부분 눈에 띄지 않도록 갈색이나 회색 털을 갖고 있다. 얼룩말이나 스컹크, 범고래 등이 몇 안 되는 예외적인 사례인데, 그중에서 대왕판다가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팀은 자연 서식지에서 어렵게 포착한 대왕판다 사진을 통해 지금까지 알려졌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단서를 잡았다.

우선 검은색 털은 어두운 그늘이나 나무둥치에서 드러나지 않고 흰색 털은 눈이나 나뭇잎과 잘 어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듬성듬성하기는 해도 담갈색 털은 토양색과 비슷한데다 자연 서식지에서 아주 어둡거나 밝은색 사이의 중간색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인간뿐만 아니라 대왕판다에게는 포식자인 고양잇과와 갯과 동물의 시력 모델에서도 같은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검은색과 흰색 털의 경계가 뚜렷한 '분열적 색'(disruptive coloration)은 멀리서 봤을 때 대왕판다의 형체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또 서식 환경과 털 색깔의 유사성을 분석하는 새로운 색깔 분석법을 활용해 다른 동물 종과 비교한 결과, 대왕 판단의 털 색깔이 뛰어난 보호색을 가진 것으로 간주해온 다른 종과 같은 범주에 포함되는 것을 확인했다.

카로 교수는 "중국과학원 동료로부터 야생에서 대왕판다를 포착한 사진을 받고 판다가 어디 있는지를 즉각 알아채지 못하면서 대단한 것을 밝혀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내 눈으로 알아볼 수 없다면 시력이 더 나쁜 포식자들 역시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이를 객관적으로 어떻게 입증하는지만 남았었다"고 했다.

논문 제1 저자인 오시 노켈라이넨 박사는 "이 희귀한 사진은 자연 서식 환경에서 대왕판다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를 처음으로 검토할 수 있게 해줬다"면서 "첨단 이미지 분석법의 도움으로 대왕판다가 포식자들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를 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변 환경과 털 색깔의 유사성을 다른 동물과 비교한 결과는 "대왕판다가 자연 서식지에서 과도하게 튄다는 믿음을 완전히 깨놓았다"고 덧붙였다.

논문 공동 저자인 브리스틀대학 심리학 교수 닉 스콧-새뮤얼 박사는 "대왕판다는 자연 서식지와는 다른 동물원 안을 배경으로 짧은 거리에서 봐왔기 때문에 눈에 띄게 보이는 것이지, 포식자 시각에서 본다면 실제로는 잘 위장돼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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